얼마 전 고환암에 걸려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앞둔 고등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아들이 고환제거 수술을 받으면 나중에 장가가서 아기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걱정했다. 다행히 이 학생은 고환 수술을 받기 전에 가임력 보존치료가 가능한 난임전문병원을 찾았기 때문에 아기를 가질 수 있다. 정자를 동결 보존했다면 결혼 후 시험관아기시술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영하 196도에 동결 보존된 정자는 본인이 원하는 동안 보존된다. 결혼한 뒤 아기를 원하면 시험관아기시술로 채취된 난자 안에 정자 한 마리를 넣어주는 미세수정술을 통해 임신이 가능하다.

한 미혼 여성은 유방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게 되자 우리 병원을 방문했다. 이 여성도 항암 치료를 받기 전에 병원을 찾아 향후 결혼한 뒤 아기를 가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문의했다. 항암 치료를 받기 전에 생리가 시작된 지 2, 3일째 되는 날 병원에 와서 과배란 주사를 맞고 2주 후에 성숙한 여러 개의 난자를 동결 보존하면 나중에 이 난자를 이용해 시험관아기시술로 임신할 수 있다.

결혼해 아기를 원하지만, 현재 아기가 없는 부인이 백혈병으로 항암 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하는 부부도 있다. 결혼한 부부는 난자나 정자를 동결 보존하는 것보다 시험관아기시술을 통해 얻은 수정란을 동결 보존하는 것이 임신에 더 유리하다. 유방암, 백혈병, 고환암, 자궁암, 그 밖의 여러 암으로 항암 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아야 하는 미혼 남녀는 향후 결혼해서 아기를 원한다면 난자나 정자의 동결 보존을 상담해야 한다.

요즘 남녀 모두 결혼 연령대가 늦어지고 있다. 여자 나이 40세를 넘어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다. 남자는 정자가 평생 생산되기 때문에 여자가 젊을수록 임신율은 높아진다. 하지만 여자 나이가 많아지면 난자의 질이 떨어져 임신율도 그만큼 낮아진다. 여자 나이가 35세를 넘으면 난자의 건강 상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즉, 여자 나이 35세를 넘으면 난자 50%가 이상 난자로 나오고, 40세를 넘으면 60~75%가 이상 난자다. 시험관아기시술을 할 때 남자의 정자보다 여자의 난자 상태에 따라, 여자 나이가 많을수록 임신율은 떨어진다. 여자 나이가 35세 미만이고 앞으로 40세를 넘어 결혼할 계획이라면 난임전문병원 가임력보존센터를 찾아 미래의 2세 계획을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시간을 다투는 암 치료 시기를 늦출 수 없어 먼저 항암 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은 뒤에 아기를 원해 난임전문병원을 찾는 일도 있다. 항암 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남자는 정자를 형성하는 생식세포에 영향을 받아 정자의 수정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여자도 난자를 만드는 생식세포에 영향을 받아 난자 형성에 이상이 생겨 임신율이 많이 떨어질 수 있다. 정자와 난자를 생성하는 생식세포가 항암 치료나 방사선치료에 한 번 노출되면 다시 정상으로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혼남녀나 결혼했지만 앞으로 아기를 원하는 환자가 항암 치료를 받게 되면 항암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와 난임전문병원 가임보존센터와 협진을 통해 향후 임신계획을 상의할 필요가 있다. 유방암을 진료하는 외과, 혈액종양을 진료하는 내과, 고환암을 진료하는 비뇨기과, 방사선을 치료하는 방사선종양학과, 그 밖의 암 치료 의료진과 나중에 환자의 임신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의견 교환이 이뤄져야 한다.

암 전문 진료의사도 정자, 난자, 수정란을 동결 보존하는 방법을 복잡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준비는 의외로 간단하다. 남자는 병원에 가서 정액 2, 3회를 받으면 되고 여자는 2주간의 시간만 있으면 난자나 수정란을 동결 보존할 수 있다. 항암 치료를 받기 전에 생리를 시작해 2, 3일째 되는 날 병원에 와서 여러 개의 난자를 얻기 위한 과배란 주사를 맞고 2주 후에 난자를 채취하면 끝난다. 이 과정에서 얻은 난자나 수정란을 동결 보존하면 된다.

암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의사는 항암 치료나 방사선치료를 하기 전에 환자에게 향후 임신을 원하는지 상의한 뒤 난임전문병원 가임력보존센터와 협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면 향후 임신을 원하는 환자에게 기회를 제공해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극복에 기여할 수 있다. 오늘날 난임 치료 기술이 많이 발달해 난자와 정자만 있으면 임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세화병원장·부산메디클럽 공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