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남포동이란 지명은 일제강점기 남빈(南濱·남쪽 해안)에서 비롯됐다. 이 일대는 자갈이 많은 해안이었지만 일제시대 매립되면서 옛날의 모습은 사라졌다. 오늘날 자갈치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지질학적으로는 이런 해안을 역빈(礫濱·자갈 해안)이라고 부른다. 통상 모래로 이뤄진 사빈(沙濱)과는 다른 해안이다. 대부분의 해수욕장이 그렇듯 부산의 유명 해수욕장 또한 사빈에 속한다. 하지만 드물게 태종대 자갈마당 일대 등에 역빈이 남아 있다.

역빈의 우리말이 바로 몽돌해변이다. 어려운 지질학 용어보다는 역시 몽돌이라고 하니 훨씬 정감 있게 들린다. 오랜 세월 풍파를 견뎌내며 둥글둥글해지고 물기를 머금어 검게 반짝이는 듯한 자갈이 곧바로 연상된다. 몽돌로 유명한 경남 거제 학동해수욕장이 흑진주몽돌해수욕장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하지만 몽돌해변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파도에 부딪치며 자그락거리는 몽돌의 소리일 터. 소리연구가 배명진 교수는 몽돌해변의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졸음을 유발하기까지 한다고 전한다. 몽돌 사이로 파도가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소리의 주기가 사람이 아주 편안할 때 심호흡하는 주기와 비슷한 데다 졸음을 유발하는 뇌파의 소리라는 것. 그 때문인지 환경부는 2011년 몽돌해변의 소리를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보기 힘든 몽돌해변이 해운대 미포와 청사포 사이에서 새롭게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1985년 청사포 간첩선 침투사건 이후 철책이 설치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던 지역이다. 최근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 인근 철책 철거 예정지를 둘러보다 수풀과 절벽에 가로막혀 있던 몽돌해변을 발견했다고 한다. 길이 250m에 폭 30m가량인 몽돌해변은 폐선부지와 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접근성도 뛰어나다. 부산에 아직 이런 천혜의 자연이 남아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다.

해운대 몽돌해변은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가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30여 년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아 잘 보존까지 된 복덩이가 굴러온 셈이다. 해운대구가 철책 철거 뒤 나무 덱 등 최소한의 시설물만 설치하는 등 자연환경을 최대한 유지할 계획이라니 당연한 조치다. 폐선부지와 연계해 널리 알린다면 부산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으로 기대가 크다. 몽돌해변의 이름도 공모를 통해 시민의 뜻을 담을 것이라니 모두 머리를 맞대야겠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