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경제가 가장 빠르게, 압축 성장을 했다고 한다. 영국은 18세기 중반 산업혁명 이후 약 250년,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약 150년,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약 130년에 걸쳐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1960~2000년 40년 동안 그런 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나친 경쟁사회가 되었고, 상대평가와 줄세우기 문화로 인해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다.
'수저 계급론'이란 용어가 의미하듯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정해져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지기 힘들다는 청년들의 탄식이 있었다. 돈 있고 권력 있는 계급이 가진 힘의 남용에 대한 울분으로 헬조선이라는 용어도 만들어졌다.
그런 우리 사회에 국정 농단 사건이 벌어지고 분노한 국민은 광화문 광장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29일 2만여 명으로 1차 촛불집회가 시작됐고 200만 명으로 커진 촛불은 마침내 이달 9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도록 만들었다.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효능감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자기효능감이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이런 믿음이 개인의 사고, 감정 그리고 행동에 영향을 주어 성공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런 성공 경험이 많아지게 되면 자기효능감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지금은 국민의 자기효능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개개인의 자기효능감뿐 아니라 집단효능감 또한 높아졌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성공적으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구성원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바로 집단효능감이다. 이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엄청난 힘에 맞서 작은 촛불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우리'라는 집단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이런 집단효능감은 그 집단이 의견을 표현하거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취하는 행동의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독일에서 이루어진 한 심리학 연구에서 대학교 등록금 제도를 만드는 제안에 대해 반대하는 학생들의 행동을 관찰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이 개인이 지닌 집단효능감에 따라 차이가 났다. 집단효능감이 높은 경우,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를 관철해가는 상황에서 비폭력적이었고 규범에 맞는 의사 표현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집단효능감이 낮은 경우는 탄원서에 서명을 받는 등의 규범적인 행동이 아니라 대학의 건물 출입을 통제하거나 강의를 방해하고 심지어 물건을 부수고 불을 지르는 등의 비규범적이고 불법적인 행동까지 보였다. 목표하는 바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의 차이 때문이다.
촛불시위는 집단효능감 외에 우리에게 정치효능감 또한 느끼게 해주었다. 정치에 관한 의견 표현과 행동이 실제로 국가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얻었다. 나 하나의 힘으로는 우리의 정치와 사회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무력감을 떨치고, 혼자 밝힌 작은 촛불이 우리 사회와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자신과 집단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만 한편으로 그 이면의 부정적인 측면을 경계해야 한다. 지나친 자신감이나 과잉믿음 (over-confidence)이다. 스스로 지닌 실제 능력보다 자신이나 집단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일이 그렇게 계속 잘 될 거라는 비현실적인 낙관성을 가지게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분석하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자신과 집단이 능력 있다고 믿게 되면서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 필요 이상으로 그 힘을 행사하려 할 수 있다. 기만적 우월감 효과라 할 수 있는 과신 오류이다. 인간이 합리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게 하는 비합리적 판단 오류이다.
특히나 처음엔 성공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자기효능감은 성공을 가져오게 되면서 이후의 상황에서는 확실함으로 작용하게 된다. 더 어려운 상황을 더 쉽게 생각하게 되고,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성공이 일어날 것이라는 과잉 확신과 기대가 결국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 금융전문가들이 처음 시장을 예측할 때는 성공하지만 그다음부터는 결코 그렇지 못한 것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되면서 그 기대만큼의 성공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촛불 집회의 성공으로 집단효능감과 정치효능감이 높아진 지금 그 효능감이 과잉으로 치달아 잘못된 방향으로 힘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힘을 추스르고 조절할 수 있도록 효능감의 과신을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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