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심을 기폭제로 하여 대한민국에 명예시민혁명이 진행 중이다. 시민혁명인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시작일 뿐 대한민국을 발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위대하고도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학계와 언론은 말할 것 없고 정계에 몸담은 많은 사람이 국가 대개조라 할 정도의 혁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에는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친 내부적 적폐들을 청산하는 과제에 더해 한반도 분단에서 비롯되는 폐해들을 극복해야 하는 남다른 과제가 부과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분야에 걸친 내부적 문제들을 개혁하는 일과 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떼려야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쉬운 예로 선거에 '북풍' 변수가 활용된다든지 정부 정책에 대해 좀 비판을 하면 '종북 좌파'로 낙인찍는다든지 하는 것들은 모두 남북 대립과 대결을 청산하지 못한 분단체제의 폐습이다.
10년간의 대북 포용정책의 결과 분단의 강고함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 남북 간에 교류협력이 개시되었다. 개성공단 사업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고, 금강산관광사업도 자리를 잡아갔다. 군사적 대립과 대결이 일거에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평화 확대의 궤적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비록 북핵 문제로 인해 속도가 지연되었지만 참여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삼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한반도 평화 확대와 교류협력의 흐름은 보수정부 들어와 급격하게 역전되었다. 비핵을 전면에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출범 첫해에 금강산관광을 닫아버렸다. '5·24조치'로 인해 남북관계가 전면 차단되었다. 다시 단절과 분단의 시간 속으로 역행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에도 실패하고 안보에도 무능하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 안보와 비핵화를 무척 강조하였지만 우리는 지금 최악의 안보위기에 직면해있다. 대단한 아이러니는 이 두 정부가 통일을 입에 달고 통일준비에 역점을 두는 듯한 태도였다. 통일을 준비한다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해버렸다. 비핵화와 통일에는 주변국들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사드 배치를 결정함으로써 중국과 척을 진 나머지 국제적 공조의 기반을 허물었다.
전 세계적 냉전이 끝나자마자 동서독은 통일에 성공하였다. 서독에서 동방정책을 추진한 지도자들과 전략가들은 통일을 원하거든 통일을 말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 우리도 허황한 통일담론에서 벗어나 평화담론으로 인식과 공론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평화가 안보, 평화가 경제, 평화가 미래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인식의 전환이 우선이다.
무엇보다도 안보 과잉이라 할 만큼 보수정부 아래서 안보가 늘 강조되었지만 안보 불안이 가시지 않는 안보딜레마를 해소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정부나 보수정당은 안보를 국내정치적 용도로 활용하는 악습을 보여왔다. 선거에서 이 악습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데, 지난 대선에서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문제를 두고 선거 막판이 '종북 좌파' 프레임에 포위된 나머지 이념 논란이 다른 모든 정책대결을 덮어버리는 선거로 변질되었다.
한층 높아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야 평화 재건 논의가 힘을 얻을 돌파구가 열린다. 지금과 같은 탄핵정국에서 남북 간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도발적 행동이나 언사를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분야에도 시민들의 각성과 관심이 큰 압박으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북핵 문제 해결도 평화 재건에 있어 중대 과제다. 현재 대화 재개의 모멘텀은 없다. 특히 미국에서 새 행정부가 들어설 참이라 기다린다는 것이 북한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대북제재에 한국 정부가 매우 적극적이다. 북핵 문제는 제재 일변도로 절대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다. 올해 상반기 내내 제재외교를 강력하게 펼쳤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일단 북핵 문제를 지금과 같이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외교적 관리 아래 가져오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과 연관 지어 평화협정 체결 구상이 중국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추진론이다.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담보해내기 위해서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구조적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행 중인 명예시민혁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 차원에서 이 정도 과업은 달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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