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을 당하자 국무위원들을 불러 놓고 "피눈물 난다는 말을 이제 알겠다"고 했던가. 기실 피눈물은 몹시 슬프고 억울해 흘리는 눈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슬프기보다 대통령의 방점이 '억울함'에 있었음은 특검과 헌재심리를 앞두고 '나는 무죄다'며 한판 싸움을 벌여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 측 움직임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의 피눈물 운운은 이런 적반하장도 없다. 잘못 뽑은 국민이 해야 할 한탄 아닌가. 십분 양보해 그 피눈물을 받아들인다 쳐도 자기 눈을 자기가 찌른 결과다. 최순실 사태 국정조사 등을 통해 일말을 엿보게 된 '비밀의 외딴 섬, 청와대'가 그것을 잘 입증한다.

여러 사람의 증언에서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실생활은 대략 이렇다. '식사는 시쳇말로 '혼밥'이다. 세월호 침몰 때도 오후 6시 저녁 준비를 했다 하니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 밤엔 TV 시청이 낙이다. 저녁 만찬과 조찬 일정이 거의 없다. 사적 공간인 관저에 많이 머문다. 올림머리에 적잖은 시간을 들이고 태반 등 주사를 맞는다. 일개 여성 트레이너를 무려 3급 행정관으로 들여 뭔가를 해왔다. 남이 쓰던 변기와 샤워기는 찜찜해 교체한다'.

사생활까지 들춰지는 건 '세월호 7시간'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근데, 그와 별개로 이제 보니 대통령의 일상 자체가 보통사람들 눈엔 너무나 낯설고 뜨악하다.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이라 해서 국정서류를 쌓아 놓고 고민할 줄 알았던 것과 딴판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대신 '방콕' '혼밥'하는 이런 모습은 비선이 잉태되고 활개 치기에 딱 좋은 환경 아닌가. 정권 초기 최순실이 일요일마다 청와대에 들어와 특별식을 먹고 '문고리 3인방'과 회의를 했다는 증언과 일맥상통한다.

박 대통령에겐 불통의 꼬리표가 늘 따라 다닌다. 그게 극소수만 접근 가능한 '관저 대통령' 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장관들에게 "대면보고 필요하나요"라고 나무라듯 되물었던 이유가 있었던 게다.

민심이 닿을 수 없는 대통령의 생활 패턴이 이러니 청와대 기강과 공적 시스템 또한 성할 리 없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조차 일주일 동안 대통령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면서도 "눈뜨면 출근이고 잠자면 퇴근"이라고 했던 말은 대통령에 대한 궁색한 옹호였던 셈이다.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도 세월호 당일 오전에 대통령 위치를 몰랐다고 국정조사에서 증언했다. 본관 집무실에 없자 서면보고서를 관저로 들고 갔는데 그때 전달받은 이는 안봉근 비서관이었다 한다. 그 뒤론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르나, 이후 일어난 참사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위급 시 보고체계가 이랬으니 평상시도 짐작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장관도, 수석도 만나기 쉽지 않으니 대통령의 육성을 가장 먼저 들을 수 있는 측근의 권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2014년 정윤회 문건'에서 드러난 안 비서관의 호가호위가 좋은 예다. 자신을 거치지 않으면 비서실장도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낼 수 없고, 대통령이 관저 퇴근 후 정부 주요 인사를 자신에게 일일이 물어보며, 청와대 수석 한둘쯤 날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간을 키운 건 이상하리만큼 외부와 소통을 꺼린 대통령 책임이 크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비정상의 청와대. 일개 회사도 오너가 자리를 지켜야 조직이 긴장하는데, 정상 위치로 출근하지 않는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직원들이 제대로 근무나 했을지 의문이다.

온갖 수상한 약물 구입에다 비선의 '의료농단'은 비정상의 극치다. 대통령 혈액을 청와대 외부 최순실 단골 병원에서 검사하고, 성형외과 의사 부부가 대통령 피부트러블 때문에 프리패스로 들락거렸다 하지 않나. 대통령 얼굴에 난 선명한 멍 자국과 주사 자국에 대해 주치의, 의무실장, 자문의, 간호장교 그 누구도 모른다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멍 자국이 최순실·세월호와 더불어 금기어가 됐다는 게 우리가 우러러보던 최고 권력기관의 민낯이었다.

경호·의료·보고체계가 붕괴한 것과 다름없는 청와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됐나' 싶다. 공범임을 적시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사상누각'이라고? 사상누각은 가만히 놔둬도 무너졌을 청와대가 아니었던가.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바로 청와대를 사유화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수시로 '보안손님'을 드나들게 한 청와대가 국정조사 특위의 현장조사는 극구 막았다. 대통령 변호인들은 헌재 답변서에서 최 씨의 국정관여 비율이 1% 미만이라고 강변했다 한다. 어떻게 계량이 가능한지 뜨악하기 그지없는 궤변이다. 그럼 청와대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들을 계량화하면? 돼 묻지 않을 수 없다. 보아하니 사사건건 절차상 문제를 삼고 지루한 법리논쟁으로 임기 연장을 꾀할 모양이다. 망쳐 놓은 청와대에 유폐된 대통령의 구차한 인식. 피눈물 난다, 국민이.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