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배우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나온 '사선에서'라는 영화도 보았을 법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대통령 경호원으로 등장한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 암살당할 때 이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이후 현 대통령에 대한 암살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사건 현장에서 온 몸을 던져 범인을 제압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속 모습은 경호전문가들이 경호원의 가장 중요한 자세로 거론하는 대목이다. 대통령 경호는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게 철칙이라 한다. 대통령을 향한 위협요인이 발생하면 본능적으로 범인이 있는 쪽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해 수단이 총이든 폭탄이든 먼저 덮쳐야만 대통령이 무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호원들은 무수한 훈련을 통해 이런 반사신경을 습득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경호와 관련해 세간에 잘 알려진 인물은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위를 남용하다 10·26 때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일부에서는 차 전 실장을 '경호원이 본받지 말아야 하는 좋은 사례'로 들기도 한다. 지위 남용을 떠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쓰러져 있음에도 혼자 화장실로 피신한 태도는 경호실장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이후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청와대 경호실이 최근 다시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해 경호실의 부적절한 처신 의혹이 불거지고부터다. 검찰과 국회 국정조사 특위 등에 따르면 최 씨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경호실의 아무런 제지 없이 청와대를 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몇몇은 '보안손님'이란 이름 아래 신원조회도 없이 청와대 초소를 통과했다. 국조특위가 현장조사를 위해 청와대를 찾았지만 경호실은 보안을 이유로 출입을 거부해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상황이 이렇자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지나치게 권력에 집중된 청와대 경호실을 폐지하자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대신 유럽 각국이나 일본처럼 경찰에게 대통령 경호를 맡기자고 제안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지난 1963년 관련법 제정으로 탄생한 청와대 경호실은 50여 년 만에 문을 닫을 수 있다. 경호실 측에서는 왜 조직을 흔드느냐고 억울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청와대 경호실이 본연의 업무 대신 탄핵 위기에 몰린 무능한 대통령의 친위대 역할이나 하고 있으니 누가 동정을 해주겠는가.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