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원경이 없고, 추하지 않은 근경이 없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건설 현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해운대해수욕장을 앞마당처럼 사용하는 관광 1번지를 만들겠다며 호기롭게 시작됐으나 들여다보니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초고층 빌딩을 지은 국가나 기업이 불행한 일을 당한다는 '마천루의 저주'가 딱 들어맞는 말이지 싶다. 국정 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있으니 하는 이야기다.

고도 제한 60m, 주거시설이 들어설 수 없는 땅에 411.6m 101층짜리 랜드마크 건물 1개 동, 85층 주거타운 2개 동이 들어서게 됐다. 게다가 세계 최대 중국 건설사가 나가떨어진 공사를 포스코건설이 책임 준공하겠다고 나서고, 1조7800억 원 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이 더해졌다. 상식의 전복, 그 이면은 전방위 로비와 특혜·비리일 뿐이다. 이 사업을 주도한 이영복 회장 이름을 딴 '이영복 게이트'의 핵심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11일 새벽 부산지검 포토라인에 섰다. 지난 8월 초 잠적한 지 100여 일 만이다. 전날 밤 서울에서 경찰에 붙잡혀 부산지검으로 압송됐다. 그 과정에 곡절이 있었다. 이 회장은 이미 자수 의사를 밝히고 10일 오후 부산으로 이동 중이었다. 부인과 아들 등이 동행했다. 그런데 이 회장이 돌연 마음을 바꿔 서울로 향했고, 가족들은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이 회장이 '자수가 아니라 검거'된 이유다. 이는 검찰의 전방위 압박과 설득 사이에서 고심하던 이 회장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 회장은 다대·만덕지구 택지전환 특혜 의혹 사건이 불거지자 도피했다가 2년 만에 자수했다. 임야가 하루아침에 택지로 바뀌었으니 부산시 고위층과 정치인들이 연루됐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로비 의혹엔 입을 다물었다. 1심 형량은 징역 3년이었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는 평을 받으며 반전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이 회장은 오는 21일 첫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검찰은 이 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 주택법 위반죄 등을 적용해 기소했다. 회삿돈 705억 원을 빼돌리거나 가로챘을 뿐만 아니라 미분양 물량 43가구를 특혜 분양했다는 것 등이다. 검찰 공소장 내용으로 볼 때 10년 정도의 실형이 불가피하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이 회장이 66세인 점을 고려하면 버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이 정·관계 로비 의혹을 공소장에 언급하지 않은 점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 검찰 수사는 지난 7월 21일 엘시티 시행사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본격화됐으나 이 회장의 잠적 등으로 지지부진했고, 이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질타의 대상이 됐다. 10월 24일 부산지검은 특수부 검사 전원을 투입하는 엘시티 비리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사실 엘시티 시행사에 대한 내사는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등으로 확보한 회계자료 분석을 통해 수백억 원대 비자금 조성 증거를 확보했다. 그런데도 정·관계 로비에 관해서는 단 한 줄도 공소장에 적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1차 기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회장과 최순실 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이 회장이 수배 중에도 최순실과 함께 회원인 강남 황제계에 곗돈을 매달 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순실이 청와대를 등에 업고 어떻게 국정을 농단했는지 드러나고 있다. 검찰을 지휘하는 사정 라인, 법무부의 엘시티 외국인투자이민제 적용, 포스코건설 시공사 선정과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에 어떤 형태로든 정권 핵심과 여당 실세 의원들의 커넥션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특위'에서 포스코건설의 책임 준공을 들어 "이영복이 보통 '빽'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될 수 없는 구조"라며 이 회장과 최순실의 관계를 되새겼다.

검찰은 이 회장과 수상한 돈거래를 한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구속하며 정·관계 로비 의혹을 훑고 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 2명의 이름이 실명으로 떠돈다. 정기룡 전 부산시 특보와 건설본부장 출신 인사가 검찰에 불려갔다. 군인공제회와 부산은행, 압수수색이 이뤄진 부산시청 부산도시공사 해운대구청 해운대구의회 등 인허가 관련 기관 등에 어떤 불똥이 튈지 장담할 수 없다. 당연히 이 회장이 모르쇠로 버틸 일이 아니다.

이영복 게이트 단죄가 필요한 이유는 자명하다. 제2, 제3 게이트의 싹을 잘라 사회 정의의 훼손을 막아야 한다. 정권의 핵심이든 국회의원이든 공무원이든 공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사익에 앞장설 순 없는 일이다. 부산시의 뼈를 깎는 자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법적 절차를 따랐다고는 하지만 막상 인허가 과정이 끝나고 보니 이런 특혜가 없다. 행정 실패를 두 번 다시 저질러선 안 된다. 이처럼 당연한 이야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야말로 불행한 사회 아닌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실패 사례다.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