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서울시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으로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를 내정했다. 변 교수는 각종 토론에서 개발론자들과 맞서는 논객으로 이름을 떨친 도시재생 전문가였다. 그런 변 교수가 다른 곳도 아닌 SH 공사 사장으로 내정되자 찬반양론이 들끓기도 했다.

서울시가 도시재생 전문가를 '개발의 수장'으로 기용한 대목은 의미가 크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을 부산으로 돌려보자.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마비된 와중에 부산에서는 해운대 초고층건물인 엘시티와 관련된 비리의혹이 터졌다. '엘시티 게이트'의 핵심 고리는 2009년 7월부터 12월 1일까지의 6개월이다. 당시 민간사업자가 최초 공모 지침에 없었던 주거시설 허용과 높이 제한 해제를 요구하자 부산시는 그대로 들어줬다.

그 과정에서 몇 차례의 용역이 진행됐다. 부산시·해운대구의 도시계획위원회까지 열렸다. 일련의 과정을 따라가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드러난다. 전문가 집단이 특혜의혹을 받는 각종 인허가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도시계획·건축·토목·교통 분야 교수나 연구원들을 말한다.

여기 함정이 있다.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서 결정했으니 최고의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하지만 현재 드러난 엘시티는 최고의 결과인가. 이 질문과 답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이 모여 한 방향만 바라봤다는 점이다. 엘시티의 규제를 해제하자고 주장한 교수가 도시계획위원에 포함되기도 했다.

실제 2009년 12월 1일 열린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도시계획위원들은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주거시설을 허용하고 높이 제한을 해제했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을 지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엘시티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나라 최고 해수욕장 바로 곁에 100층이 넘는 건물을 짓는 데 반대 목소리가 거의 없었다. 모두 한쪽 방향만 바라본 결과다.

상상을 해보자. 만약 당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인문학자나 환경·시민단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건물만 보지 않고 해운대해수욕장과 부산의 미래를 고려하는 의견을 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도시계획위원들이 간과했던 문제들을 지적했을 것이다.

이제 현재를 보자. 다행히 2009년보다 상황은 낫다. 도시계획위원 28명 중 대부분이 도시계획과 건축·토목 분야 전문가지만 여기에 언론인과 도시행정을 전공한 교수가 포함돼 다른 목소리를 낼 구조가 만들어졌다. 100여 명으로 구성된 건축위원회에는 눈에 띄는 위원이 있다. 건축위원회에 소속된 교통분과 위원 중 택시기사 2명이 이름을 올려 현장 목소리도 낸다.

아직 그들은 토목·건축 전문가들 틈에 끼여 자기 의견을 대폭 반영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앞으로 다양한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 늘어나면 힘이 더욱 커질 것이다. 시는 다양성 확보를 위해 인문학자를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도시계획위원과 건축위원 모두 시장이 위촉한다. 그래서 시장의 철학에 따라 도시개발이 한층 다양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진정한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앞으로 철학 교수가 도시계획위원회에서 도시개발 전문가 집단과 맞서 토론하는 장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야 '제2의 엘시티 비극'을 막을 가능성이 커진다.

사회1부 차장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