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 중에 가장 인기가 있는 노래가 바로 '창부타령'이다. 창부타령은 원래 무가의 일종으로 '노랫가락'과 마찬가지로 속화된 민요이다. '창부'란 무당의 남편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뜻하는 '광대신'을 가리킨다. 이 광대신은 무당이 위하는 광대의 혼령인데, 광대신인 창부를 불러 재수가 있게 해달라고 비는 굿을 '창부굿'이라 한다. 창부타령은 바로 이러한 굿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창부타령의 가사는 100개가 넘으며, 대개 단가 잡가 시조 가사 등에서 전이돼 온 것이 많다. 이러한 창부타령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전태용이 부른 노래다. 전태용(1920~1990)은 경기도 옹진 출신으로 굿판에서 악기를 연주했고, 흥이 도도해지면 노랫가락이나 창부타령을 불렀던 전설의 명인이었다. 전태용이 부른 창부타령 중 널리 알려진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백구야 나지를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다/성상이 버리시매 너를 쫓아 여기 왔네/나물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대장부의 살림살이가 요만하면 넉넉한데/일촌간장 맺힌 설움 부모님 생각뿐이로다." 이 가사는 정조 때의 문신이었던 홍국영이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추정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정조의 총애를 받아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던 홍국영이 지방으로 추방되고, 흰 갈매기 나는 강릉에서 33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홍국영이 장기와 같은 잡기를 좋아했고 시조와 창에도 능했다는 몇몇 기록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은 그야말로 일설에 불과하다. 조선 시대의 여러 시조와 가사에는 그와 같은 모티브는 많이 반복되고 있고, 또 이 노래와 홍국영이 직접 관련된 문헌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홍국영은 정조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충심으로 정조를 모셨다. 25세 때 과거에 급제한 후에 동궁(정조)을 보좌하는 춘방사서가 돼 정조의 눈과 귀가 되어 각종 정보를 취합하고 영조의 엄중한 감시망에서 정조를 보호했다. 특히 세손(정조)의 승명대리(承命代理:임금의 명으로 대신 정사를 돌보는 것)를 반대한 정후겸 홍인한 김구주 등을 탄핵해 실각시키고 홍상간 홍인한 윤양로 등의 세손 살해 음모를 적발해 그들을 처형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1776년 3월 정조가 즉위한 지 4일 만에 홍국영을 동부승지로 삼았다.
28세의 나이로 파격 발탁된 홍국영에 대한 정조의 총애는 깊어만 갔다. 그해 6월 홍국영은 이조참의를 겸직하고, 7월에는 도승지로 승진했다. 또 규장각 직제학, 비변사 제조에 이어 금위영 대장으로 임명됐다. 왕을 호위하는 숙위소를 창설해 숙위대장도 맡았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장, 경호실장에 수도방위사령관까지 겸직한 셈이다.
이처럼 여러 요직을 겸직했으므로 홍국영의 위세는 대단했다. 하지만 홍국영은 여기서 더 나아갔다. 1778년 13세였던 자신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원빈)으로 들여보내 훗날의 권력까지 내다보았다. 하지만 원빈은 그 이듬해 1년 만에 사망했다. 이에 홍국영은 정조의 이복동생 아들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 완풍군으로 봉했다. 정조의 후계가 없을 것을 대비한 발상이었다. 한편으로 홍국영은 정조의 비 효의왕후가 자신의 누이 원빈을 죽였다고 의심해 궁녀들을 문초하기까지 했다. 결국 정조는 1779년 9월 홍국영을 불렀고, 홍국영은 사직소를 올렸다. 이후 몇 달간 홍국영의 패거리가 홍국영의 사직에 반대하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1780년 3월부터 홍국영을 단죄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자 홍국영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횡성을 거쳐 강릉 바닷가에 머물면서 울분을 떨치지 못하다가 1781년 3월 병으로 죽는다.
훗날 정조는 이렇게 회고한다. "지난날 홍국영을 쓴 것은 어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런 것이겠는가. 온 세상 사람이 모두 한 구덩이에 들어 있는데 흉적의 집안과 원한을 맺은 사람은 오직 그 한 사람이므로 그를 쓴 뒤에야 흉적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이 그를 발판으로 조정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낭패는 내가 어찌 염려하지 않았겠는가."('홍재전서') 국왕이 되었을 때 홍국영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당시 조정은 노론 벽파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노론 벽파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원죄가 있었다. 노론 벽파는 당연히 정조에게는 큰 걸림돌이어서 정조는 그들을 '흉적'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정조는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홍국영을 등용해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이어 홍국영이 안하무인이 되자 홍국영을 정리하면서 정국의 안정을 도모했다. 정조의 지략과 용인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홍국영의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홍국영의 몰락과 죽음은 자초한 것이다. 전태용의 '창부타령'에 나오는 것처럼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사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몰랐기에, 홍국영은 쓸쓸한 바닷가에서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고 33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하물며 홍국영의 발끝조차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말해 무엇할 것인가.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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