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전국 곳곳의 도로가 촛불로 가득하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제기된 대통령 비선실세 의혹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졌고, 이에 대한 진실규명과 명확한 책임을 묻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제3차 담화를 통해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을 추진했다고 밝힌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고위 공직자의 부패와 비리, 기업에 대한 부정 청탁, 교육기관의 특혜는 이제 명명백백해졌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지난달 12일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만 주최 측 추산 100만 명, 한 주 뒤인 19일은 전국적으로 80만 명, 26일에는 200만 명, 그리고 12월 3일에는 무려 232만 명이 모여 함께 대통령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유례가 없을 만큼 대규모 집회였지만 평화적 시위로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회가 끝나고 시민들 스스로 거리를 청소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였다. 외신들은 "한국 시민들은 위대하나, 한국 정부는 무능하다"라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공연, 크고 작은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이 오늘날 집회의 모습이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다양한 시민들이 자유발언대로 나와 시국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것인데, 그간 정치 주체로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세대들은 이 시국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도무지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을 요구하며, 앞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하자고 제안한다.
그중에서 얼마 전 수능을 치른 고3 수험생이 의분에 차 외친 목소리는 큰 울림이 있다. 그녀는 지금 전 국민과 언론이 지나치게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시민의 헌신과 희생으로 힘겹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적을 끌어내리는 것에만 집중한 탓일까, 1960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에 맞서 일어난 4·19 혁명 이후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가 터졌고, 1979년 10·26 사태로 독재정권이 무너졌지만, 곧 전두환 군부가 비민주적 방식으로 집권한 역사가 있다. 그녀는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재 대통령 퇴진 이후의 구체적 대책에 관한 시민들 사이의 논의가 절실하다고 외쳤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은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일상에서 실천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탐구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에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에게 '정치' 혹은 '권력'은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정치는 본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결정 사안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들을 종합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일상의 곳곳에서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실천할 때, 개인의 행복한 삶은 물론이고, 그토록 염원하는 정의로운 사회도 현실이 될 수 있다.
북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민주주의와 투표의 개념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초등학생이 되면 정당의 역사와 철학이 필수 교과로 지정되어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그 이유에 대해서 토론하는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나아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위해 참여하는 법에 대해 알아간다. 민주주의는 일상에서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하게 하는 힘, 그리고 그를 공론의 장에서 함께 토론하며 만들어가는 기술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마땅하고도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에게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은 새삼 중요한 삶의 문구가 되어버렸다.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함으로써 내 삶의 주인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할 때, 우리는 더는 스스로를 부패한 정치의 무력한 피해자로 느끼지 않아도 된다.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승리일 것이며, 명예일 것이다.
인디고잉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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