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후 2시50분께 루게릭병과 투병 중인 경남 양산시 동면 김백련(85) 씨의 집. 김 씨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안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김 씨는 스마트폰으로 양산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김수연 교수와 장애인 원격의료서비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동네 의원 원장의 얼굴을 보며 원격진료를 받고 있었다. 유영경 방문간호사가 거동이 불편한 김 씨를 도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중개했다. 의료법상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가 금지돼 있어 간호사의 역할이 필요하기도 하다.
의사들은 산소포화도 혈압 혈당 맥박은 물론 식사량 등 환자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변이 검게 나온다"는 김 씨 가족의 말에 의사들은 장 출혈과 빈혈 가능성을 의심하며 간호사에게 부탁해 스마트폰 화면으로 환자 눈의 충혈 상태까지 확인했다. 그런 다음에 "가까운 시일 안에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라"고 했다. 스마트폰과 IT(정보통신)를 활용한 원격진료이긴 하나 의사와 환자 및 가족이 15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환자 치료뿐 아니라 위로의 말이 곁들여진 치유가 이뤄진 셈이다. 김 씨 가족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어 가까운 병원에 가려면 사설 구급차를 불러야 하고 한 번에 30만 원가량의 비용이 든다"며 원격진료에 아주 만족해했다.
대학병원이나 유명 개인병원에서 이뤄지는 이른바 '3분 진료'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십 명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다 보니 의사는 진료 이외에 환자의 안부를 묻거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넬 여유조차 없다. 환자도 자세히 물어볼 게 있어도 밖에서 기다리는 다른 환자 눈치가 보여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의사는 바빠서 환자 얼굴 대신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는 동안 3분가량의 진료 시간이 끝나기 일쑤다. 몇 시간을 기다려 받는 진료 시간이 고작 3분이라는 점에서 허무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3분 진료는 우리 의료계의 왜곡된 현실을 보여준다. 환자는 대학병원과 유명 병원의 3분 진료에 불만이 있다. 의사 역시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환자의 질병이나 상태에 따라 진료시간이 길어질 수 있는데도 의료수가가 시간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책정됐다"고. 시간 대비 진료비가 연동되지 않아 환자를 많이 받을수록 병원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다.
환자와 의사가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의료현실 속에 인공지능(AI) 의사로 불리는 '왓슨'이 국내 병원에 도입되고 IT, 빅데이터, 바이오가 결합한 융합의학(디지털 헬스케어)과 개인별 유전적 특성을 반영한 정밀의학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인천에 있는 가천대 길병원이 도입하기로 왓슨은 IBM이 개발한 AI 컴퓨터로 환자 정보를 입력하면 사전에 학습한 방대한 양의 논문과 진료기록 등을 분석해 진단과 함께 적합한 암 치료법을 제공한다. 의사는 왓슨을 내비게이션으로 삼아 치료법을 결정하는 식이다. 길병원 측은 "왓슨을 통해 진단 오류를 줄이고 불필요한 검사 남용을 막아 진료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왓슨으로 누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암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빈부 격차에 따른 의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의료환경 변화에 맞춰 잘못된 의료체계를 능동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치료와 병원 위주의 의료 패러다임을 질병 예방과 환자 중심으로 돌려놓자는 얘기다. 그러면 머지않아 사람들이 디지털헬스케어 기기를 이용해 고혈압 당뇨 스트레스 등을 평소에 관리하고, 증상이 있으면 초기에 원격진료를 받아 병원에 갈 일이 줄어드는 의료시스템이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왓슨과 디지털 헬스케어, 원격의료가 의사의 '밥그릇'을 침범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잘 활용하면 의사의 판단을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 25일 양산부산대병원이 수행 중인 장애인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점검하러 왔던 보건복지부 방문규 차관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병원에 직접 가기 어려운 환자를 위한 원격의료서비스는 의료사각지대에 따스한 빛을 전하려는 작은 노력입니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18,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도 제출됐지만 동네 의원들의 반발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주 로체스터라는 작은 도시에 있으면서도 세계 최고의 병원으로 성장한 메이요병원의 혁신철학을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생각은 크게, 시작은 작게, 행동은 빠르게'.
의료과학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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