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저터널을 한다면 영불 방식이 아닌 미래형 하이퍼루프로 가야 합니다." 최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일 해저터널 2차 라운드테이블'에서 나온 발언이다.

하이퍼루프는 일단 용어 자체가 새롭다. 기존의 틀을 깨는 방식, 한계를 넘어서는 발상이 눈길을 끈다. 진공 튜브 속에 캡슐 모양의 열차를 넣어 고속 주행하는 5세대 교통수단이다. 현재 미국에서 연구가 본격화돼 상업화 단계에 있다고 한다.

영불 해저터널 모델은 20년이 넘어 낡은 개념이라는 주장이다. 이왕이면 미래형으로 가야 후회가 없다는 주장은 공감이 간다. 하이퍼루프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CEO) 엘론 머스크가 2013년 제안한 초고속 교통 시스템이다. 공기 부상식으로 아진공튜브(0.001기압) 안을 시속 1220㎞로 이동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610㎞ 구간에 투자 계획이 잡혀 있다.

고속철도 비용의 10%면 건설이 가능할 정도로 저렴하다. 건설비가 싸니 편도 요금도 20달러 정도다. 최고 속도로 운행하면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30분, 서울~부산은 1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구미가 확 당긴다. 이런 장점 때문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주 정부가 2020년까지 하이퍼루프 20㎞ 구간을 시험 운행하고 개발회사인 미국의 하이퍼루프원과 협약까지 체결했다. 두바이 정부는 150㎞ 거리인 수도 아부다비를 하이퍼루프로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하이퍼루프에 주목하는 것은 한일 해저터널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안이라는 점이다. 우선 비용 절감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규슈~이키~쓰시마에서 부산까지 전체 320㎞에 달한다. 진출입로까지 합하면 거의 400㎞로 영불 해저터널 전체 50㎞(해저터널 38㎞)의 4배가량이다. 쓰시마에서 부산까지 해저터널만 따져도 160㎞에 달한다. 전체 건설비는 100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번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한 중앙대 허재완 교수는 건설비가 85조 원 이하면 경제성이 있고 95조 원이라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부산발전연구원도 지난 8월 1차 라운드테이블에서 해저터널 건설의 한국 분담 비용이 19조 원일 경우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물론 경제학자들의 경제성 분석을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다. 허 교수는 39조 원의 생산유발과 26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추산했다. 부산발전연구원은 생산유발 효과 54조 원, 고용유발 효과 45만 명 정도라고 밝혔다. 추산치이긴 하지만 과다한 느낌이 없지 않다. 영불 터널의 경우 직접 고용인원은 3200명에 불과하다. 관광과 컨벤션, 물류, 쇼핑, 숙박 등 모든 분야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수십만 명은 과하다.

하이퍼루프의 건설 비용이 고속철도의 10%라는 게 사실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선은 수익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해저터널의 약점 중 하나는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효율은 낮다는 것이다. 항공기보다 늦고 선박보다는 비싸다. 비용도 저비용 항공과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일본 혼슈~홋카이도 54㎞의 세이칸 터널은 1988년 개통됐지만, 저비용 항공에 밀려 한정된 목적에만 사용된다. 영불 터널 역시 저가 항공과의 경쟁으로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18조 원이 든 영불 터널이 그렇다면 100조 원에 육박하는 한일 터널은 말할 것도 없다. 적자를 줄이려면 건설비용이 최소화돼야 한다. 그래야 사람과 화물의 터널 이용료가 낮아질 것이다. 일단은 값이 싸야 파급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일 간의 역사·심리적 장벽은 최대의 난제다. 해저터널 하면 국민이 떠올리는 건 정명가도를 내건 임진왜란의 참혹함이다. 36년 식민 통치의 아픔 또한 아직 상흔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도발은 극복이 대단히 어렵다. 이런 정서적 거부감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일본에 대륙진출의 길을 터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라시아의 시발점이자 종착지인데 굳이 그걸 일본에 넘겨 줄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하이퍼루프라면 이런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 기존의 철로와 완전히 시스템이 다르니 한일 간만 연결될 뿐이다. 터널이 뚫려도 여전히 유라시아철도의 기점과 종점은 부산이 된다. 부울경과 규슈 경제권의 통합 효과는 누리면서 부작용은 제거할 좋은 카드다. 기술 이전이 가능하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물론 대형화물은 아직 기술적 제약이 있어 극복 과제로 남아 있다.

어차피 세계는 7개 대륙이 분리되기 전의 '판게아의 꿈'을 향해 가고 있다. 영불 터널은 말할 것도 없고 알래스카 놈~러시아 우엘렌을 잇는 베링 터널도 검토 중이다. 해저터널 102㎞, 총길이 600㎞로 유라시아철도와 북미대륙철도를 연결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국내적으로도 목포~제주 해저터널은 물론 인천~웨이하이 한중 해저터널도 검토된 바 있다. 아직은 경제성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이뤄질 꿈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그런 연장선에 있다.

은산해운항공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