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실권자 계강자가 공자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공 선생, 나라에 도둑이 걷잡을 수 없이 설쳐대니 어찌하면 좋겠소."

공자가 답한다. "그대가 진실로 백성들의 것을 탐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상을 준다고 해도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같은 해답의 뿌리는 정명론(正名論)에 있다. 제나라 임금인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때 공자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입니다."

논어 자로 편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나온다. 임금의 초청을 받아 위나라로 가는 공자에게 제자인 자로가 묻는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겠답니다. 선생님께선 어떤 일을 먼저 하시렵니까."

공자가 "명분(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하자, 자로가 실망한 듯 따진다. "선생님은 현실을 너무 모르십니다. 명분 따위로 뭘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이에 공자가 자로를 꾸짖으며 가르친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할 수 없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뤄질 수 없고, 일이 이뤄지지 못하면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할 수 없고,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다."

기원전 춘추시대의 상황은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들어맞는다. 요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최순실 게이트'와 '이영복 게이트'는 제 것이 아닌 것을 사유화하려는 탐욕에서 비롯됐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박근혜 게이트' 또는 '청와대 게이트'라는 표현이 본질을 더 적확하게 설명해준다. 대통령은 국민이 잠시 위임한 권력을 마치 자기 것인 양 국민 동의 없이 사설 비선에 헌납했다. 비선 실세인 개인은 대통령으로부터 빼낸 국가 권력을 사적 이익을 챙기는 데 몽땅 사용했다. 이처럼 대통령과 그의 비선이 국민의 것을 탐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공적 시스템은 사유화됐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전혀 대통령답지 못했고, 파란 지붕 아래서 대통령을 보좌한 참모들은 전혀 참모답지 못했다.

해운대해수욕장 끄트머리에 101층 높이로 올라가는 엘시티 역시 민간자본과 정치·행정이 결탁해 공공자산인 부산 연안을 사유화하려다 들통난 사례다. 원래 시민의 것이었던 부산 연안은 오래전부터 민간 주도의 매립과 난개발로 사유화됐다. 정치권과 행정은 연안 개발 때마다 민간자본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질 때까지 지정된 용도지역과 지구단위계획을 바꾸고 또 바꿨다. 수영만·용호만·민락 매립지가 대표적인데, 제 것이 아닌 것을 빼앗으려다 보니 갖은 특혜와 검은 거래가 불가피했으리라. 정치답지 않은 정치, 행정답지 않은 행정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대통령이, 정치가, 행정이 자신의 이름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혼란스럽다. 명분을 상실한 대통령의 말은 순리에 맞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아 보인다. 그러니 국가는 신뢰를 잃었고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될 리 없다. 일이 안 되니, 융성해야 할 문화는 사유화된 권력을 한 줌이라도 뜯어 먹으려는 자들 탓에 혼탁해졌다. 한술 더 떠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은 팔짱 끼고 웃으며 수사기관 위에 군림하니 국가 형벌도 이젠 믿을 수 없게 됐다. 죄를 지어도 합당한 대가를 받지 않는다는 생각에 국민은 손발을 두기는커녕 의지할 구석이 없다.

이 혼돈을 끝내는 방법은 욕심을 버리고 '돌려주는 것'이다. 진짜 주인을 찾아주는 일인데, 행여 아깝다고 생각하거나 미련을 가진다면 정말 염치없다. 대통령은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위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국민이 붙여준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바르게 할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행정은 다 망가지고 얼마 남지 않은 연안이라도 시민 품에 안겨줘야 한다. 민간자본, 토건세력과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바람보다 빨리 번진다. 대한민국이 위기다. 위기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게 극복했다. 이제 시민의 것, 국민의 것을 돌려주시라. 이름답지 않은 지도자가 판치는 세상. 촛불 들고 일어선 시민이, 국민이 훨씬 시민답고 국민답지 않은가.

기획탐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