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청와대와 중앙정보부가 관리해 오던 안가(안전가옥) 10여 채를 일거에 철거한 것은 '밀실정치'와 단절을 꾀하려는 상징적 조치였다. 안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비밀회의나 10.26사건 때처럼 은밀한 만찬장으로 주로 활용됐다. 지금도 혹시 모를 필요성 때문에 한두 군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다. 안가가 다시 세인의 관심사로 떠오른 건 '최순실 게이트'가 하나둘 드러날 즈음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입에서 불쑥 나오면서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모금 협조 요청을 위해 재벌 회장을 만난 곳으로 안가를 지목했다.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상세히 밝혀질 터.

돌이켜보면 이 정부 들어 청와대는 안가에서나 있을 법한 희한한 일을 적잖게 벌여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제2 부속실에서 시계형 몰래카메라를 사들이고, 경호실도 아닌 외교안보실에서 전문가형 디지털 도청 감지기를 구입한 게 대표적 예. 2015년 1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청와대 물품 취득 자료를 공개하면서 구입 목적을 질의했으나 청와대는 입을 다물었다. 사설기관이 불륜 추적 등에나 사용할 법한 기구가 왜 청와대서 필요했는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불신 청와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근데 최근 한 언론보도로 수수께끼 일부가 풀리는 듯한데 여기에도 최순실이 어른거리니 기가 찰 노릇. 최 씨의 전 남편 정윤회 씨가 '문고리 3인방'을 이용해 국정에 개입했다는 이른바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전후로 청와대 안팎에서 세력다툼이 벌어졌는데 이때 최 씨가 자신을 둘러싼 청와대 내부 동향을 알아보려 몰카를 침투시켰다는 게 요지다. 특검이 밝혀야 할 숙제가 하나 더 늘어난 셈.

그 어느 기관보다 투명해야 할 청와대에서 무슨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해괴망측한 일이 또 드러났다. 2014년 3월부터 올 8월까지 2260만 원어치의 태반·마늘·감초주사가 청와대에 들어갔고, 심지어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도 대량 구입했다 한다. 주사는 경호원 등의 건강관리 목적, 비아그라는 아프리카 순방 때 고산병 치료 목적이라고 해명했지만 글쎄다. 특히 비아그라는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의약품 아닌가. 베일을 벗을 날이 머지않은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해 온통 비밀투성이인 청와대다. '시크릿 가든'의 후속 드라마 '시크릿 청와대'가 나올 판이다.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