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차기 대통령에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 외교가 '국익에 우선'을 둔 정책이 될 것이며, 소모적인 해외 개입은 자제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및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포함한 공동 대응, NATO나 동맹국들의 방위비 부담 압력,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협정 재협상을 그 핵심 내용으로 보고 있다.
미국 국익을 우선으로 대테러전은 지속해서 전개하면서, 불필요한 대외개입을 줄이고, 국내 경제회복을 위해 무역협상을 전반적으로 수정하겠다는 것이다. 선거유세에서 트럼프는 동맹국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동맹국들의 핵무장도 용인하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 재협상을 주창하면서 중국 위안화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고립주의와 현실주의가 결합된 외교정책이 현실화된다면 세계질서는 재편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유세 기간 주창했던 보호무역주의가 단지 '협상의 기술'에 그칠지 혹은 '반자유무역'으로 나타날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중국 및 아시아 국가에 대한 무역정책이 강경책으로 선회할 것은 자명하다.
특히 트럼프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가입을 '역사적으로 가장 큰 대규모 일자리 탈취'라고 규탄했고 미국은 이미 무역전쟁을 하고 있으며 그 전쟁에서 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트럼프는 또한 자신의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인 러스트 벨트(rust belt) 백인 노동자들에게 구직을 약속하면서 일자리 창출을 중국으로부터의 위협 및 보호무역과 연계하였다. 미국이 보호무역을 선택할 경우 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 역시 중국과 러시아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레이건, 트럼프 모두 선거기간 동안 '미국의 쇠퇴'라는 미국인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려를 활용했다. 레이건은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미국의 아침'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을 일소하고 경기회복을 통해 미국의 위상을 다시 세우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국가들을 비난하기보다 워싱턴 정치의 무능함과 패배주의를 비난하였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역시 미국 쇠퇴론을 암시하면서 워싱턴 정가의 쇠약함, 무능함, 부패를 비난하였다. 하지만 그는 또한 미국이 세우고 지켜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남을 도와주었을 뿐이며 미국 시민들을 희생시켰다고 공격하였다.
미국의 외교는 힘의 외교만이 다가 아니다. 레이건은 미국을 다시 자유를 수호하고 전파하는 등대와 같은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만들겠다며 자유주의 가치를 외교정책의 원칙으로 명확히 하였다. 미국의 가치와 이상은 민주주의, 법치, 인권, 자유, 그리고 인종, 성, 종교, 국적에 차별을 두지 않는 시민문화다. 이러한 가치와 이상이 미국외교의 한 원칙을 이루었고 레이건, 부시,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의 한 축이 되어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선거 유세 기간 동안 한 번도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고, 타 국가 민주적 지도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적도 없다. 미국외교의 전통인 가치와 원칙이 빠진 것이다.
트럼프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그 여파는 지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화평발전과 신형 대국관계를 내세우면서 주변 지역으로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시진핑은 중화민족부흥을 위해 '일대일로'를 내세우면서 본격적으로 팽창정책을 펼치고 있다. 아시아 질서는 미국이 자유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포괄적 개입으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가운데 힘의 균형을 이루며 지탱되어왔다. 트럼프가 원칙이 없는 힘의 외교를 선택한다면, 자유주의 질서는 후퇴할 것이고 G-2 관계가 악화되고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선택을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고립주의를 선택한다면 미국의 개입으로 이루어졌던 힘의 균형에 공백이 생기며, 아시아 국가들은 또 다른 선택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지금 중국에 대립각을 세우며 친미정책으로 경제 불황을 타파하고 안보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한국외교는 미중 틈바귀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우선해야 할 일은 워싱턴을 잡는 것이다. 아베는 벌써 트럼프와 단독회담을 했다. 워싱턴을 잡아야한다. 그래야 우리의 선택의 폭이 커진다. 향후 석 달간은 미국에서 정권 이양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미국 차기 정권의 대아시아, 대중국 정책이 확정되기 전에 우리의 입장을 명백히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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