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철도를 나는 나의 애마라고 표현하곤 한다. 역세권에 사는 까닭도 있겠지만, 도시철도에서 시간을 곧잘 벌기도 한다. 그래서 전철 안 풍경을 소묘하는 것을 참 즐겨했다. 지금 전철 안은 조용하다.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낼 수가 없다. 모두 고개 숙인 사람들뿐이다. 예전처럼 잡담을 하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살짝 엿듣던 것이 그립다. 책을 읽는 풍경도 그립다.
이렇게 고개 들지 못하게 하는 범인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에 빠져 고개를 들지 않는 사람을 중국에서는 '저두족'이라 부른다지. 문자 그대로 '고개 숙인 족속'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잠깐 짬나는 시간에 주로 무엇을 합니까? 묻는다면 아마 많은 분이 스마트폰을 검색한다고 답할 것 같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길 가는 사람도 이제 더 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버스나 전철 안에서는 물론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아 뒷사람을 방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급기야 '스몸비족'이란 신조어가 탄생했는데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다. 스마트폰에 빠져 외부세계와 단절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혹시 길을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릴 때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면 여러분도 스몸비족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스마트폰 이용으로 인해 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안전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그것이다. 스마트폰 중독이 목숨까지도 위협한다는 소식에 세계 각국이 긴장상태에 돌입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스마트폰을 보던 한 남자가 바로 앞의 절벽을 보지 못해 추락사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중국에서는 스마트폰에 집중하던 여성이 강물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통근열차 두 대가 정면충돌하면서 무려 11명 사망, 85명 부상을 불러온 사건이 발생했는데 원인은 철도 신호제어 담당자가 휴대전화 게임에 빠져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는 해외토크를 나도 스마트폰으로 접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길거리를 점령한 스몸비족, 길거리에 좀비가 돌아다닌다니 도로 위의 시한폭탄처럼 위험에 눈 감고 말이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한 스마트폰이 내 존재를 위험에 빠뜨린다니 난감하다. 스마트폰 중독이 불러온 죽음, 참 쓸쓸한 문명의 이기다. 심각해져 가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물결의 홍수를 견디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마트폰으로의 외면일까.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시선을 빼앗는 것은 손바닥 위의 스마트폰, 최신 뉴스와 쇼핑, 재미나는 게임은 물론 모든 유익한 정보가 여기 들어 있다는 듯, 길을 걷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이 대화상대라도 된다는 듯. 길을 묻는 나를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 스마트폰에 길 안내가 자세히 나와 있으니 그것을 보며 가라는 듯. 방향감각이 둔한 내가 길을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알록달록한 밤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사각형부터 길쭉한 배너까지 다양한 형태의 스티커가 길바닥에 붙어 있었다. 아니 녹색테이프로 통신사 광고물을 붙이는 사람을 보았다.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스몸비족이 늘면서 이들의 시선을 노리는 길바닥 광고라는데, 내용도 다양하다. 바닥에 광고를 붙이는 이유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느라 주위 를 안 보고 고개 숙이고 다니기 때문"이라며 잠깐만 붙여놓아도 효과가 꽤 좋다고 했다.
새로운 노이즈 마케팅 수법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기야 마케팅의 첫 번째 조건이 어쩌면 노출인지도 모르겠다. 길바닥에 넘쳐나는 부착물들이 옥외 광고물들보다 알록달록하다. 단순하게 길바닥에 붙은 광고가 더 돋보일 수는 있겠다. 버려진 전단지부터 바닥에 붙어 있는 부착물의 흔적이 비에 젖었을 때는 왠지 더 짜증스러웠다.
이래저래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세상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사소하지만 우리를 외면하게 만드는 딜레마가 많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간단한 예로, 광고전단지를 받아야할지 말아야할지 받아서 버려야할지, 나눠주는 사람들을 불편한 마음으로 외면하는 선택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곤 한다. '저두족 현상'을 보인다는 중국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스마트폰에 빼앗긴 어린 자녀가 애정결핍에 걸려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고 한다. 그래서 '스마트폰보다 자녀의 얼굴을 보자'는 말까지 생겼다는데 조그마한 기계 하나가 웃지 못 할 현상을 만들어냈으니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다. 이래저래 말문이 막히는 세상이다.
시민들의 질서정연한 함성이 팩트가 된 작금의 현실, 참 할 말 없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기계인 스마트폰의 조종을 받는 좀비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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