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무질서하던 1950년대 미국에선 갱들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담력을 겨루는 극단적 게임이 하나 생겨났다. 차량 2대가 마주 보며 전속력으로 돌진해 승부를 가리는 것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선택은 단둘. 서로 피하지 않고 충돌해 공멸하거나 어느 한쪽이 핸들 방향을 트는 것인데 지는 쪽은 겁이 많아 도망 다니기 일쑤인 닭에 비유돼 '치킨게임(Chicken Game)'이라 불렸다. 1955년 개봉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주인공 제임스 딘이 불량배 두목과 차를 몰고 절벽을 향해 나란히 질주하는 장면을 올드 팬들은 기억할 터. 이게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치킨게임은 미국 일반 젊은이 사이에서도 행해졌다 한다.

치킨게임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간의 극심한 군비경쟁을 꼬집는 표현으로도 차용되면서 국제정치학 용어로 굳어졌다. 상대가 무너질 때까지 출혈 경쟁을 하는 사례는 산업계에서도 왕왕 나타난다. 2000년대 중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세계적 기업들과 점유율 각축전을 벌인 게 대표적 예. 마진을 줄여 손해를 보면서까지 경쟁한 결과 내로라하는 일본, 독일 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사업을 접었고 삼성이 왕좌에 올랐다. 만약 삼성이 그 치킨게임에서 졌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느 한쪽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치킨게임은 더욱 성립되기 쉽다. 더 물러날 곳도 없으니 '너 죽고 나 살자'거나 '너 죽고 나 죽자'는 극단을 택하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그 주변이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에 나선 게 딱 그 짝. 대통령은 분노의 촛불을 소 닭 보듯 하며 업무를 재개했고, 청와대는 헌법 수호를 위해 대통령 퇴진은 있을 수 없다 하고, 친박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궤변으로 대국민 선전포고를 한 양상이다.

진지를 파고 갈 데까지 가보자며 장기전을 편다 해서 대통령 지지율 5%를 반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기에 그 어떤 행위도 먹히지 않을 터인데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단 한 줌도 안 되는 성 안의 사람들과 성 밖의 사람들로 철저히 분리돼 있다"는 한 정치인의 말은 정확히 과녁을 뚫은 표현이다.

박 대통령이 국민과 벌이고자 하는 '1 대 100'식의 치킨게임은 위험하고도 무모한 도박이다. 나라를 판돈으로 걸겠다는 건가. 자꾸 이러면 대통령이 그나마 품위를 갖추고 청와대 정문으로 걸어나오지 못하고 뒷문으로 꽁무니 뺄지도 모른다. 주말에 타오를 4차 촛불이 국민이 주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변영상 수석논설위원 b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