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의로서 나는 매일 환자들이 호소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때로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이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내가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일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음을 믿는다. 나는 당뇨병을 다루는 의사다. 현재는 나타나지 않는 감추어진 문제를 찾아 예방하거나, 갑자기 진행된 합병증은 그 요인을 파악하여 진행을 억제하는 데 노력을 하고 있다. 당뇨병 관리에 중요한 4가지 요소가 있다. 식사요법 운동요법 약물요법의 3가지 요소는 많은 분이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반면, 나머지 1가지 요소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 교육'이 그 정답인데, 당뇨병 관리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학습을 통해 당뇨병 환자들은 자신의 질환을 더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받는다. 즉 당뇨병 교육의 목표는 환자가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과 의사 결정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환자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우리 인생 자체가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듯이 국가도 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쟁점들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런 쟁점들을 그동안 축적해온 문제 해결 시스템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정부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정부가 '최순실'로 인하여 중병을 앓고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21세기 민주 공화국의 대통령이 공적 시스템이 아닌 사적 시스템으로 국정운영을 해왔다는 내용이 알려지고, 거기에 비선 실세가 문화 안보 교육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전횡을 저질러 온 것이 드러나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문제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왜 대통령이 국정을 비정상적으로 운영해 왔고, 어떻게 이러한 일이 민주 공화국이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헌법의 첫머리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국가의 일원일 수밖에 없게 된다.

각 나라의 헌법의 첫머리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미국은 첫머리에서 입법부 즉 미국 의회를 정의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자신들의 씻지 못할 과오를 반성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불가침이다'로 시작한다. 역설적으로 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우리 헌법의 첫머리가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 준다. 우리는 지금 민주공화국의 시스템이 망가지는 과정을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어려움을 다시 극복해 낼 것이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이다. 하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아 보인다. 어수선한 틈을 타 정치적 입지를 세우려는 사람, 드러나 있지 않은 의제를 관철하려는 사람, 속한 조직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사람이 그들이다. 우리는 청와대를 위시한 행정부, 여야의 입법부,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을 포함한 사법부, 그리고 언론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사람이 병을 얻고 다시 건강을 되찾듯이, 도산할 것만 같은 기업이 혁신을 통해 성공하는 데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산신할멈에게 간절히 기도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그동안 사회적 파장과 비용이 큰 문제가 발생하면 이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다른 문제로 덮어버리거나 그냥 잊히기를 바랐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만큼은 후대에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 조사와 처벌은 물론이거니와, 문제 해결 과정을 빠짐없이 남겨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그리고 우리는 희망한다.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을 잘하는 정부를 갖기를.

해운대백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