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탕' '재탕' '시늉만 한 구조조정' '업계에 떠넘긴 구조조정' '계속 폭탄 돌리기'….

지난달 31일 정부가 발표한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다룬 신문과 방송의 기사 제목에서 사용된 어휘들이다. 정부는 이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 장관회의에서 '조선·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과 '조선밀집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함께 내놨다. '빅2' 체제로의 전환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조선업의 경우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현재의 '빅3'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대신 2020년까지 11조2000억 원을 들여 공공선박 63척을 포함해 250척 이상의 선박을 조기 발주해 수주 절벽을 극복하도록 했다. 해양플랜트 기자재의 국산화율을 높이고, 대우조선해양은 2018년까지 인력의 41%(5500명)를 감축하는 등의 자구계획도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포함됐다. 해운업에 대해서는 지난해 말 12억 달러 규모로 설립한 선박펀드의 덩치를 24억 달러로 늘려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자본금 1조 원 규모의 '한국선박회사'(가칭)를 설립해 부실 선사의 배를 인수하고 다시 빌려주는 방식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부산 등 조선밀집지역에는 긴급경영안정자금 6800억 원 등 2020년까지 3조7000억 원을 투융자 형식으로 쏟아붓기로 했다.

이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비판 일색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을 살려 조선업을 현재의 빅3 체제로 유지하기로 한 것을 골자로 하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비판이 집중됐다. 정부가 민감한 산업재편 문제를 차기 정부로 떠넘겼다는 것이다. 외국계 전문 컨설팅사가 대우조선해양의 독자 생존이 어렵다는 전망을 내놨지만, 애써 외면했다. 세부 경쟁력 강화 방안 역시 지난 6월 말 업계가 자체적으로 내놓은 자구안을 짜깁기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일부는 정부가 그동안 추상적인 말만 늘어놓은 채 구조조정을 하는 시늉만 했다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요즘 정부세종청사 주변에서는 '복지부동의 계절'이 왔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정권 말기에 괜히 새로운 정책을 밀어 붙여봐야 실익이 없다는 정서가 관료들에게 퍼진 것은 오래전이다. 5년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이를 두고 심지어 '동면(겨울잠)에 들어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복지부동도 각종 대책과 방안은 쏟아내면서 실제 일은 안 하는 식으로 교묘해지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온 나라가 '최순실 블랙홀'에 빠져들면서 공무원들은 사실상 일손을 놓다시피 했다. 정부의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비판은 이 같은 분위기와 맞물려 더 증폭되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기획재정부는 지난 1일 비교적 긴 내용의 해명자료를 통해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 비판에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해명자료에서 눈길을 끈 것은 '정부는 산업·기업 구조조정에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매진해 왔으며, 앞으로도 당장 임시방편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였다.

최근 들어 우리 경제에는 '소비·생산·투자 트리플 추락' '소비자물가 상률 8개월 만에 최고' 등 우울한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 경제가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다. 지난 2일 오전에는 임종룡 현 금융위원장이 신임 경제부총리로 전격 내정됐다. '책임감과 소명의식으로 매진하겠다'는 경제 관료들의 다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닌 진심이기를 기대한다.

서울경제부 부장 cj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