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이 '최순실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자고 나면 터져 나오는 최 씨의 국정농단, 국기문란이 그 끝을 모를 지경이다. '연설문 유출' 의혹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최 씨가 비선 실세임을 뚜렷이 확인시킨 꼴이어서 국민을 더욱 격분케 한다. 탄핵, 하야라는 말까지 나돌 지경이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자칫 임기 1년4개월을 남겨 놓고 '식물 대통령'이 될 판이다. 비상시국이라는 인식을 갖고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고강도 수습책을 내놔야 한다.

최 씨의 국정 개입 정황들은 2014년 '정윤회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구속기소 됐던 박관천 전 경정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 권력서열은 최순실 1위, 정윤회 2위라고 했는데 당시엔 최 씨가 생경한 인물로 묻혔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일개 민간인이 수시로 청와대 보고를 받고 국정과 인사에 개입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왕조시대 상왕정치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때 최 씨를 단속했더라면 이런 사달은 나지 않았을 게다. 정호성 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의 책임이 위중한 이유다. 이들 모두 최 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는 증언까지 나온 마당 아닌가.

권력 주변을 관리해야 할 우병우 민정수석도 더는 설 자리가 없다. 검찰 최고 정보통이라 불린 그가 최 씨를 몰랐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야당은 국감에 불출석한 우 수석과 연설문 유출을 부인했던 이원종 비서실장을 고발할 태세다. 스스로 물러나든지 대통령이 도려내는 인적 쇄신이 급선무다.

개헌 카드가 하루 만에 동력을 상실한 데서 보듯 대통령의 국정 수행력이 현격히 떨어진 느낌이다. 이 시점에서 대통령의 탈당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본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야 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국회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거국내각 구성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대통령은 외치에만 집중하고 내치는 중립 총리, 여야를 초월한 거국내각을 구성해 민심을 수습하는 과감하고 지체 없는 조치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