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침공은 어디?'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의 최신작으로, 미국을 진정한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감독이 직접 세계 여러 나라의 좋은 정책과 문화들을 훔치러 간다는 설정의 영화다.무어 감독은 유쾌하고 신랄한 풍자로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영화도 어김없다. 감독이 찾아간 평화롭고 자유로운 나라의 모습이 이어질수록, 그와 정반대되는 미국은 정말 '이상한 나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그 이상한 나라 미국의 모습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세계 곳곳의 모습들이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여겨진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좋은 사회'의 모습은 이러하다. 이탈리아는 일 년에 유급휴가가 8주라 삶의 여유를 충분히 즐기고, 점심시간이 3시간가량이라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집에서 식사할 수 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의 범죄자들은 처벌을 받기보다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존엄성을 되찾게 하고,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아무리 죄질이 무겁더라도 최고 형벌은 10여 년의 감옥행에 그친다. 또 대학 등록금이 없는 슬로베니아의 청년들은 '빚'이란 단어를 모르고 산다. 그중 단연 부러운 것은 교육에 관한 내용을 담은 핀란드 편이다. 아이들이 아이들일 수 있는 시간 동안에 충분히 뛰어놀며 즐길 수 있도록 학교에서는 숙제를 내주지 않고, 있다고 해도 영감과 비전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의 것만 학생들에게 주어진다. 규격화된 시험이 없어 모든 교육 과정은 아이들이 자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것으로 구성된다. 핀란드는 좋은 학교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 없이 집에서 가까운 학교가 가장 좋은 학교다. 사설 교육기관이 거의 없는 덕분에 부잣집 사람들도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야 하고, 이는 결국 공립학교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분명한 도덕적 목적과 전문가로서 독립성을 가진 교사들은 사회에서 가장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아이들 스스로가 행복을 찾고 만들 수 있는 존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예술과 문학은 너무나 중요한 과목이고, 서로 어울려 노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이런 핀란드를 보고 있으면 "이민 가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핀란드 사람들은 이것이 대단한 노하우 덕분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교육 정치 문화 경제 등 사회 요인들을 잇는 하나의 공통된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비전을 갖고 끈질기게 노력한 성과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 핀란드 한 학교 교장은 "(시험을 위해서 경쟁적으로 공부하는) 미국 아이들은 언제 놀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지요?"라고 묻는다. 교육은 인간이 인간답게, 잘 사는 데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공부를 입시경쟁의 도구로만 여기고 있다. 그래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친구를 이기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의 다른 말이 돼 버렸고, 노는 것은 죄악이자 나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공부는 잘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거나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생겨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정녕 우리는 무엇을 교육하고 있는 것인가?
1854년, 찰스 디킨스는 정해진 교과서 속 사실이 아닌 모든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당시 시대의 모습을 담은 소설을 썼다. 그 시기의 학교는 정보를 주입하며 인간적인 감수성 상상력 감정과 같은 것들은 허황됐다고 가르쳤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영혼이 메말라갔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감정들, 예를 들어 자유 우정 사랑 배려 친절과 같은 가치들을 잃어간다. 틀에 박힌 교육방식에 벗어나지 못하고 끝끝내 타인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남게 되는 인물과 그를 거부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이 소설의 제목은 '어려운 시절'이다.
자유를 꿈꾸고 그것을 실현해가기 어렵다면, 더불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사는 삶이 불가능한 사회라면, 그것은 분명 어려운 시절이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 사회 역시도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어렵지 않다.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원칙에 그 해답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떻게 행복하고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도 이 질문에 끈질기게 매달려야 한다.
인디고서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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