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는 기억도 아스라한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들어왔다. 산의 정상 가까이에서 잠자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가 만세를 부르는 삽화를 볼 때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곤 했다.

이들은 왜 말도 안 되는 경주를 하는 건지, 낮잠을 자지 않아 별명이 '토까이'였던 나로서는 토끼가 낮잠을 잔다는 설정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갖가지 일을 겪으며 세상을 헤쳐 오다 보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야말로 세상을 제대로 그려놓은 것 같아 씁쓸한 마음으로 수긍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승리의 깃발 따위는 결코 꽂을 수 없는 수많은 거북이가 있을 뿐, 몇 안 되는 토끼가 대부분의 정상을 독식하고 있다. 삽화 속의 그림은 그저 기적이요, 거북이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거대자본만 있으면 인간이 욕망하는 대부분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 피땀 흘리는 노력의 과정이 없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누렸다는 뉴스는 매일이다시피 쏟아지고 있다. 그 참혹한 진실을 차라리 모른다면 상실감이 덜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진 자들의 특징은 항상 그들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알리려 들고 행세하려 든다. '갑질'을 해야만 비로소 그들의 목표가 달성된다는 듯이 천박한 얼굴을 어디에나 들이밀기 때문에 가지지 못한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만 한다.

우리 사회의 주요지표들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악이다. 그러니 일생 동안 꿈 언저리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한 많고 늘 억울한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분배와 삶의 만족도에 관한 한 우리만의 고민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자살은 10대 사망 원인 중의 하나다. 또한 지난 십 년 동안 자살한 사람이 총기 사망자보다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그들과 비교될 정도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미국인이 스트레스로 남을 죽일 때 우리는 자신을 죽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죽음은 재촉하지 않아도 항상 우리 곁에 와 있다. 늘 죽는다는 아이를 양육해야만 했던 나는 암 병동을 자주 드나들었고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다. 인간은 반드시 죽지만 그러기에 죽음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바싹 다가선 저승사자를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발버둥 치는 이도 보았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남은 식구야 어찌 살든 하루라도 더 연명하기를 소망하는 이 또한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연명 치료에 보험료의 70%가 소비되고 있기도 하다. 사후 세계는 모두가 궁금해한다.

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내 작은 아이도 그랬을 것이다. 죽은 이를 본다는 자칭 영매를 찾아보았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잘 맞히더라는 댓글이 하도 많아 잠 안 오던 어느 깊은 밤에 용기 내어 글을 띄워보았다고 했다. '하늘나라로 떠난 제 언니는 잘 지내나요' 라고. 그랬더니 너무 늦어 잠자러 나가겠다던 그가 수백 명의 신청자를 물리치고는 '방금 언니 소식 물었던 사람 나와 봐'라며 아이를 불러내더니 '언니는 어떤 사람이었나'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 질문에 내 아이는 '사랑만 주고 떠난 사람'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는 '어떻게 살았길래, 저렇게 잘 지내고 있는지 참 궁금하네, 이승에서 너무 잘 살아서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아갈 사람으로 환생도 할 것 같다. 본 적 없는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다'라는 말을 하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28년을 살다간 내 아이가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았다. 아이는 토끼들만 사는 세상에서 일생 거북이처럼 뒤처지며 살았다. 찬바람만 쏘여도 감기로 죽는다 했고, 스무 번 정도면 학습이 되는 내용도 1만5000번을 해야만 터득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포기해버리는 것을 아이는 즐겁게만 5000번을 하고 또 하여 상형문자 같았던 글씨체를 반듯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어떤 유혹에도 꿋꿋하게 사랑만 하다 떠났다. 거북이처럼 온몸으로 온몸을 밀며 간신히 나아갔던 내 아이는 지금도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의 삶은 타자의 희생과 헌신 위에 영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언제나 공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인간의 책무와 천상의 사랑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약자의 존재는 우리에게 늘 그렇게 존재함만으로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일은 못 하고 일거리만 만드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잘못 인식한다. 그들은 평생 번데기로 이승에서의 삶을 견디지만, 천상에서는 찬란한 나비가 되어 날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은 살아온 나날들이 장식한다. 그러니 지진 때문에, 부패한 세상 때문에 분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수록 생애 최후의 순간이 될지도 모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든 사랑하며 견디는 수밖에 없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