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광안리 바닷가였다. 작은 개를 네 마리나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해 질 무렵이었고, 토요일 저녁이었다. 토요일 저녁에 흥청대지 않는 사람은 없는 듯이, 해변은 가벼운 알코올기와 들뜬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인디 밴드나 가수들이 몇 군데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돗자리를 펴고 앉은 모래사장에선 통기타 음악과 함께 사랑노래가 가까이 들렸다. 개들은 바닷가를 따라 왕복으로 산책을 마친 후 완전히 지쳐버렸다. 콜라 한 캔을 따자 개들은 돗자리 위에 웅크리고 앉아 끄덕거리며 졸았다. 노래는 처연했다.

그때, 백사장 옆 도로가 쪽 해변에 앉아 있던 나와 바다 사이로 한 중년의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모래사장에 쭉 늘어선 야자수 파라솔 아래에 막 자리를 잡으려는 참이었다. 남자의 한쪽 손은 치킨 박스를, 나머지 한쪽 손은 맥주 몇 캔을 소중히 들고 있었다. 바다로 울려 퍼지는 사랑 노래를 함께 흥얼거렸던 것도 같다. 파라솔 아래 신문지 몇 장을 깔고 조심스레 엉덩이를 안착시킨 그는 닭다리 하나와 맥주 한 캔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 참으로 '외롭게'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치킨과 함께인 남자가 불행의 냄새를 풍기는 광경을 본 건 처음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그처럼 고독하게 닭고기를 뜯지 못했을 것이다. 해가 꼴딱 넘어갈 때까지 그는 바다를 보며 세 조각의 치킨과 맥주 두 캔을 먹어치웠다. 나는 콜라를 홀짝이며 외로운 남자의 혼맥을 주시했다. 그가 뭔가 결심한 듯 바닷물로 뛰어든다면 119에 신고라도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셋씩, 넷씩 짝을 지어 서로를 헌팅하느라 난리법석이었다. 너무 예쁘신데요, 저희랑 놀러 가실래요? 노래방 가실래요? 번호 좀. 아이 참, 됐다니까 그러세요오호호호. 유혹의 DNA와 넘치는 호르몬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광안리에, 그와 나만 철저히 제외되어 있었다. 내가 그를 지켜본 것은 일종의 위안 때문이었을까. 3년 전만 해도 스물여덟 살이라고 뻥 치는 게 먹혔는데, 나의 자조는 비굴하고도 비현실적이었다. 그의 등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인간은 다 외로운 거야. 나는 공감의 시선으로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때, 그가 벌떡 일어섰다. 나는 휴대전화를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몇 개의 예지가 혼란스럽게 뒤엉켰다. 신고하기보다 가서 붙잡아야 하나? 도움을 청해야 하나? 소리를 지를까? 난 수영을 못 하는데. 구한 후에는 어쩌지? 119가 아니라 112인가? 바닷가에 점점 다가서는 그의 운동화가 금방이라도 물에 젖을 듯했고, 몇 초 사이 등줄기에 식은땀마저 흘렀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리려는 자세를 취했다. 안 돼, 기다려요 아저씨! 애끓는 목소리가 성대를 울리려는 순간, 그는 갑자기 바다를 따라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조깅은 경쾌하고 가벼웠다. 어둑한 바다의 가장자리로 그는 천천히, 그러나 격렬하게 근육을 움직였다. 그는 달리고 있다. 목표를 향해. 치킨과 맥주 몇 캔을 버려둔 채 습기 찬 공기에서 탈출하고 있다. 오해를 넘어서자 감동이 밀려들었다. 외로움이 삶을 버릴 것이라고 단정 지은 나는 얼마나 연약한가. 그는 머리카락이 몇 올 남지 않은 정수리를 드러내며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며, 내게서 느리게 멀어져갔다. 그리고, 방금 그의 파라솔 곁을 스쳐 지나간 중년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레고만큼 작아진 그가 혼자 산책 중이었던 여자에게 열심히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야자수 파라솔 쪽을 가리키고, 먹다 남은 치킨 박스를 가리키고, 싱싱한 냉기를 간직한 맥주 캔을 가리켰다. 당황한 여자가 수줍은 기색을 내비쳤다. 밤 바닷가였는데, 어둑한 해변이었는데, 멀리서도 그의 환한 미소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둘은 남자가 조깅했던 발자국을 따라 총총히 걸어 파라솔 아래로 돌아왔다. 남자는 여자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신문지를 더 넓게 펴 주고, 냅킨에 나머지 닭다리 하나를 싸서 들려주고, 캔 맥주를 따 주었다. 둘은 곧 다정해졌다. 나는 더더욱 외로워졌다. 내 주변을 포진하고 있는 네 마리의 강아지 따위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둘이 맥주를 두 캔째 마시는 걸 보고 나서야 괜히 가출했던 어이가 괜히 돌아왔다. 아 뭐야 진짜. 신경질이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탁탁 소리가 나게 돗자리를 털어 접고 나는 쌩하니 돌아섰다. 집에 가는 길엔 알코올이 조금 든 음료수도 샀다. 취하기 좋은 토요일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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