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퍼들은 골프가 안 될 때 온갖 핑계를 댄다. 골프의 핑계는 366가지가 있다고 한다. 1년 365일 매일 한 가지를 대도 하나가 남는다. 그것은 '오늘은 왠지 스윙이 안 되네'라고 한다. 그 수많은 핑계도 똑같은 것이 반복되다 보면 하나의 '현상'으로 고착되게 마련이다. 그것을 '징크스'라고 부른다.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징크스에 관한 고민을 하겠지만 골프만큼 징크스가 많은 종목은 없는 듯하다. 프로 골프 선수들이 가장 많이 가진 징크스가 바로 숫자에 관한 것이다. 골프공에는 자신의 공임을 확인하기 위한 1부터 4까지의 숫자가 쓰여 있는데 대부분 골퍼는 1등 즉, 우승을 의미하는 1번을 선호하며, 동양권에서는 '死(죽을 사)'와 발음이 같은 4번을 가장 꺼린다. 박인비 역시 4번 공을 사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4번 공을 사용하여 우승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용은은 PGA 챔피언십에서 3번 공으로 우승한 경험이 있어 지금도 3번 공을 사용하고 있고, 반대로 예스퍼 파네빅은 3번 공만 치면 스리퍼트를 한다는 이유로 한동안 3번 공을 피했다고 한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대회의 마지막 날에는 반드시 빨간색 셔츠와 검은 바지를 착용한다. 여기에는 투혼의 의미도 있지만, 흑인 아버지와 태국 어머니의 혈통을 자랑하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한다. 김세영도 빨간 바지를 입으면 긴장이 풀리고 집중이 잘 되어 선두권에 있거나 위기의 순간에 늘 빨간 바지를 찾는다. 배상문은 대회 마지막 날 검은색 모자를 절대 쓰지 않는다고 한다. 또 한희원은 첫 홀에서 버디를 잡으면 그날 경기는 잘 안 풀린다고 한다. 안시현은 아버지가 경기를 지켜보는 날이면 잘 쳐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성적이 좋지 않다고 하고, 김미현은 LPGA 투어 동료인 도티 페퍼와 라운드하면 공이 잘 안 맞는다고 한다. LPGA 투어에서 첫해에 좋은 성적을 낸 신인 선수가 이듬해에 성적이 부진한 2년 차 징크스는 유명하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징크스가 생기는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난 사건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기 때문으로 본다. 불운과 실패의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음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과 위안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핑계의 일종인 것이다. 대부분 징크스는 부정적인 것들이다. '이 홀에서는 주로 더블 파를 한다' '연습 스윙을 할 때 땅을 스치지 못하면 뒤땅을 친다' '3m 퍼팅은 제일 어렵다' 등등.

최근 한국 프로골퍼들이 이러한 징크스에서 벗어났다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10월 2일 LPGA 레인우드 클래식에서 우승한 김인경은 4년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30㎝퍼팅 징크스를 벗어났다. 9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21언더파라는 메이저대회 최저타 신기록으로 우승한 전인지는 이번 우승으로 3번 연속 이어진 준우승 징크스와 2년 차 징크스를 동시에 깬 것으로 기사화됐다. 신지애는 경기 중 물을 마시고 플레이한 홀에서 보기를 한 것이 징크스가 돼 한동안 경기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하지만 징크스를 이겨내고자 18홀을 돌면서 샷을 할 때마다 물을 마시며 라운드를 한 끝에, 보기도 하고 버디도 하며 물 징크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혹시 골프 징크스로 인해 고민 중이라면 신지애처럼 정면돌파로 멋지게 징크스를 깨버리는 것은 어떨까? 징크스는 만드는 것도, 깨뜨릴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징크스는 골퍼들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자신의 약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징크스를 없애는 방법은 연습뿐이다. 징크스란 없다고 생각하며 더는 핑계를 만들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와 더 많은 노력으로 즐거운 라운딩을 하시길 바란다.

부산외대 교수·BNK프로골프단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