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서 고령자들의 운전 위험성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가 많다.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지난해 229만 명을 넘어서고 교통사고 발생률도 급증하자 고령운전자에 대한 규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고령친화적 교통환경 등 사회적 여건 조성에 대한 관심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2010년 세계 최초로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한 뉴욕 시는 보행이 느린 노인이 미처 건너지 못했을 때를 대비해 건널목 중간에 잠시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횡단보도를 개선했으며 보행로 중간에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브루클린 구(區) 등에서는 지역 상가들의 협조를 받아 노인들이 편하게 물건을 구입하게 하고 집까지 무료로 배달해 설치도 해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하는 고령친화사업지구를 조성했다. 어퍼 웨스트사이드 지구에서는 노인들의 공공수영장 이용시간도 주민 합의로 특정시간대에 시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가끔 '실버마크'를 부착한 승용차를 도로에서 볼 수 있는데, 차와 간격을 두지 않고 붙이거나 함부로 추월하면 벌점과 벌금이 부과된다. 일본 최초로 고령친화도시에 가입한 아키타 시에서는 70세 이상 노인들이 버스를 이용할 때 100엔만 내도록 교통비를 할인해주는 '버스 코인'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에 대응하고 사회공동체가 함께 참여해 누구나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도시를 만들어가는 노력들이다.
올해 안에 부산은 WHO(세계보건기구) 고령친화도시에 가입할 전망이다. 노인층을 비롯해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는 슈퍼시니어 정책회의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했고 부산복지개발원이 기초안을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부산시의 여러 관련부서에서 사업을 확정한 뒤 '고령친화도시 실행계획'을 수립해 지난 8월 WHO에 제출했으며 해당 사무국이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직접 인터뷰를 받는 등 관련절차를 모두 마친 상태다. 이제 부산은 우리나라 광역시·도 중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한 도시가 되며 향후 다른 시·도와 시·군·구의 참여가 러시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WHO는 고령친화도시를 노인에게만 국한하는 게 아니다. 모든 연령대에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건강, 참여, 안전에 대한 기회를 최적화하여 활기찬 고령화(Active Ageing)를 추구하는 도시로 정의한다. 여기서 '활기차다'라는 뜻은 신체 및 고용의 능력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시민적 사항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이며 건강, 참여, 안전을 핵심적 정책축으로 삼고 있다. 고령친화도시를 보다 쉽게 표현하면 노인에게만 친화적인 도시가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다양한 사회경제적 삶의 영역에서 활기찬 '나이 듦'을 경험하는 도시이다.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는 WHO가 2007년부터 추진한 프로젝트로, 회원 도시가 된다는 것은 고령화와 관련된 도시정책과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각국 도시들의 다양한 실천적 노력에 대한 정보교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미 부산시는 고령친화도시가 갖추어야 할 외부공간 및 건물, 교통수단, 주거, 사회적 참여, 존중과 사회통합, 시민적 참여와 고용, 의사소통과 정보, 공동체 지원 및 보건서비스 등의 8대 핵심 영역별로 고령친화도에 대한 점검을 진행했고 고령친화도시를 위한 핵심사업을 설정해 추진하고 있다. 부산의 고령친화도시 전략은 노인들의 활기찬 삶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전 연령층의 참여를 통해 세대 간 통합과 모든 세대의 생애주기형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경로가 될 것이다. 노인들의 접근성을 높인 공원과 근린시설 등을 더욱 확대하고 질병 예방과 지역사회 돌봄에 더 집중해 시민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일본 국립장수의료센터가 있는 아이치 현의 오부 시는 의료·요양시설, 공원, 스포츠·건강타운, 주거시설 등을 엮는 고령친화의 웰니스 밸리(Wellness Valley) 도시전략을 통해 일본에서는 드물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또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며 관련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고령화를 도시성장의 도약대로 삼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오부 시의 성장전략만큼이나 시민행복 중심의 도시철학에도 눈길이 간다. 오부 시에는 다음과 같은 도시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좋았고 이곳에서 생활해서 좋았다'. 부산시민 모두가 노후를 보내면서 자랑스럽게 하는 말이 되기를 소망한다.
부산복지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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