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후보 1차 TV토론이 열린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여성을 돼지, 굼벵이, 개로 불렀다"며 여성비하 발언을 문제 삼았다. 트럼프가 "대통령 될 얼굴도 아니다"며 클린턴을 공격하자, 클린턴이 "여성·인종차별주의자"라며 역공을 펼친 것이다.

한 여성의 실명까지 거론됐다. 1996년 미스 유니버스 알리시아 마차도다. 클린턴은 트럼프가 그녀를 '미스 돼지(Piggy)'라고 불렀으며, 그녀가 히스패닉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마차도는 19세에 미스 유니버스 왕관을 썼으며 섭식장애를 극복하고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여진이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트럼프는 폭스뉴스 방송에 나와 "진짜 최악이었다. 그녀가 당선자였는데 이후 몸무게가 엄청나게 늘었다"며 마차도를 깎아내렸다. 첫 TV토론에서 수세에 몰렸으니 분풀이라도 하고 싶었을까.

여기까지는 트럼프의 아킬레스건인 여성비하 문제를 둘러싼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여겨진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를 진행한 여성 앵커를 두고 "눈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어딘가에서도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여성의 생리를 빗댄 혐오성 발언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트럼프는 거구의 여성 코미디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쟁자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부인 등에게도 여성비하 발언을 날렸다. 클린턴 입장에서 이를 놓칠 리 없다.

9일 2차 TV토론을 앞두고 트럼프에게 메가톤급 악재가 터졌다. 워싱턴포스트가 그의 음담패설이 담긴 녹음 파일을 폭로했다. 2005년 10월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이 파일 내용이 가관이다. 트럼프는 버스 안에서 연예매체 '액세스 할리우드'의 빌리 부시에게 유부녀를 유혹한 과정을 설명했다. 여성 성기까지 입에 담았다. "그녀에게 엄청 세게 대시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결혼한 여자였다." 당시 59세인 트럼프는 현 부인인 멜라니아와 결혼한 상태였다.

'트럼프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빈말이 아니다. 공화당이 발칵 뒤집혔다. 지지 철회와 대선 후보 사퇴 압박이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도 사과했다. 세상의 반인 여성을 적으로 돌려세운 트럼프의 처신은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닌 듯하다. 비호감도에서 남부럽지 않은 두 후보의 맞대결이 점입가경이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