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은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사망 5주기였다. 췌장의 신경내분비종양에 걸려 투병해 온 그가 2009년 간 전이로 인해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방사성동위원소(Radioisotope·RI)를 이용한 치료를 받은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미국 내에서 Y(이트륨)-90 DOTATOC을 사용하는 치료제가 미국 식약처(FDA)의 허가를 받지 못한 이유로 비밀 치료를 받기 위해 스위스로 갔다고 한다.

'방사선 미사일치료'라고 알려진 이 방법은 신경내분비암에 선택적으로 달라붙는 단백질인 DOTATOC 등을 강력한 에너지의 베타선을 내는 Y-90이나 Lu(루테슘)-177 방사성동위원소와 결합한 주사액으로 만들어 주입하는 방식이다. 정맥주사나 선택적 동맥주사법을 사용해 전이된 암을 교차사격 방식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주위 정상 조직의 손상을 최소화하므로 암 치료율이 높고 수술과 화학요법보다 삶의 질이 우수한 장점이 있는 첨단치료법이다. 간 전이 등이 있는 내분비신경종의 전체 치료율이 70% 이상인 보고에 견줘, 치료 이후 2년 후에 사망한 스티브 잡스의 치료성과는 너무 진행한 이후여서인지 모르나 안타까운 결과로 보인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연두교시에서 암 등의 난치병 치료에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시대를 선포한 바 있다. 이런 개별 맞춤형 정밀의료에 진단과 치료의 동시적 개념인 '테라노스틱스'(치료와 진단의 합성어로 진단과 치료를 동시에 구현하는 최첨단 정밀의료 기술 분야의 하나)는 매우 적합한 방법이다. 최근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의료 선진국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차세대 치료 방사성의약품 개발에 착수했다. 난치성 종양질환 치료에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표적치료의약품인 Zevalin과 Bexxar가 개발됐고 표적치료 의약품에 필요한 분자표적 약물개발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새로운 치료용 방사성의약품 개발 가능성과 경제성은 매우 크다.

부산시는 '동남권 방사선의과학단지'를 조성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오래전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런 원자력 비발전 분야가 발전 분야에 비해 상당히 뒤처진 우리나라에서 원자력발전소가 밀집된 동남권에 비발전 의료 분야 클러스터 조성이 시급하다. '기장로'로 명명된 수출용 원자로는 폭발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동위원소생산용 시설로, 몇 년 안에 기장군에 완공 예정인 사업비 2700억 원이 넘는 대형시설이다. 여기서 생산되는 고부가가치의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활용은 부산 의료 수준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 새로운 단반감기 방사성의약품은 환자의 진단이나 치료 때마다 동위원소와 의약품의 합성과 안전성 유지·평가가 필요하므로, 원자로와 가까운 곳에서 검증과 연구를 겸한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암센터의 뒷자락에 올해 들어설 예정이던 중입자치료센터가 여러 이유로 개원이 지연되는 사정을 고려하면, 더욱 RI 기반의 테라노스틱스 치료가 가능한 시설이 들어서야 한다.

다이아몬드 원석을 캐는 남아공의 광산을 기장로에, 다이아몬드의 최대 가공회사인 드비어스를 테라노스틱스 치료시설에 비유하고 싶다. 부산이 단순히 방사성동위원소나 몰리브덴 등의 원 물질을 판매하는 위치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신개념의 방사성의약품을 제조해 직접 각종 난치성 암과 전이암을 치료할 수 있는 '테라노스틱스센터'를 기장로 인근에 구축한다면, 다이아몬드산업에서 드비어스사와 같은 비중의 의료시설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시설은 시가 내놓은 'TNT 2030'과 창조경제를 내세운 정부 정책에 부합하고, 의료관광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전 세계에서 몇 곳 되지 않는 난치암 치료센터로 스위스 PSI(Paul Scherrer Institute), 독일 바트베르카(Bad Berka) 중앙병원 등을 모델로 삼을 수 있다.

기장군에 조성 중인 동남권 방사선의과학단지에 수출용 신형연구로 개발 및 실증사업인 '기장로'와 연계해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부산 울산 경남지역 6개 의과대학병원 핵의학과를 포함한 관련 분야 의사, 연구원들과 협력해 첨단분자 테라노스틱스센터를 건립한다면 한국과 부산의 의료 수준이 높아지고, 특정 분야 암 치료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첨단 의료기술 분야에 대한 시의 현명한 선택과 집중 지원을 기대해 본다.

부산시 산학관협의회 방사선의과학소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