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을 보낸 지 2주일이 지났다. 명절 때면 TV방송에서는 늘 그렇듯이 외국인 장기자랑과 우리말 겨루기 대회 등을 방영하곤 하는데, 이번 추석에는 유독 씨름경기 중계를 많이 한 것 같다. 그래서 살펴보니 연휴 하루 전인 13일부터 마지막 날인 18일까지 '2016 추석장사씨름대회'가 열렸다. 특히 14일부터 17일까지 태백·금강·한라·백두 장사 결정전까지 모두 KBS 1TV에서 중계가 되었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공중파 TV에서 씨름경기를 중계한 것이 꽤 오랜만인 듯했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전통 스포츠 씨름은 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1983년) 결승전은 61%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으니 그 인기가 실로 엄청났다. 당시 천하장사에 올랐던 이만기 선수는 유명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기억이 난다.

힘을 바탕으로 하지만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고, 화려한 기술이 그 재미를 더해 주는 경기인 씨름. 이 같은 씨름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이 언제부터였나 생각해 본다. 각 팀이 승패에 집착하면서 경기에 유리한 체격 조건의 선수를 대거 영입하면서부터가 아닐까? 거구들이 씨름판을 장악하고 기술씨름이 아닌 무게중심의 씨름으로 변모하면서 관중들은 재미를 잃었고, 상대적으로 급부상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등이 씨름에 대한 국민의 흥미를 앗아간 듯하다.

그렇게 씨름은 어느 순간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고, 씨름선수들은 하나둘 모래판을 떠나 격투기 선수 등으로 전환했다. 태권도는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택견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씨름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듯했다.

씨름 관계자들은 예전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했다. 지루한 샅바싸움을 없애려 규정을 바꾸고, 체중 상한제를 둬서 선수들의 체중이 160kg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2012년 국회에서는 씨름진흥법이 제정되어 '씨름의 날'이 생겨났고 정부의 재정적 지원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한씨름협회 회장선거에서 분신 소동이 일어나는 등 갖가지 분쟁과 열악한 재정 상황으로 씨름은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통합씨름협회 출범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은 씨름 재도약의 불씨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민족정신이 담긴 전통 스포츠로, 자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모 역시 한때 인기가 시든 적이 있었다. 그러자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노력과 참신한 마케팅을 통해 그 위기를 극복한 결과 다시 일본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일본 스모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 프랑스 여행 중 남부 지중해의 작은 도시 세뜨를 방문했다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17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주뜨 노티끄'라는 전통축제 기간에 마침 그 도시를 여행한 것이다. 주뜨 노티끄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루아얄 운하에서 창(봉)으로 상대의 방패를 공격해 물로 떨어뜨리는 경기인데, 모든 시민이 선수들처럼 흰색 경기복을 차려입고 함께 즐기며 경기에 열광한다. 이런 모습에 나도 푹 빠져 예정기간보다 더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씨름도 스마트한 마케팅, 그리고 과감한 내부 혁신으로 다른 나라의 전통 스포츠처럼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다시금 듬뿍 받게 되기를 희망한다.

동서대 레포츠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