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알파고와 이세돌 대결로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잠깐' 높아진 적이 있다. 그런데 마침 그때가 제20대 총선을 바로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그런 때문에 앞선 총선 때와 달리 여러 정당이 너나없이 총선 비례대표로 과학기술인을 영입하는 데 뛰어들었다.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정치 현장에 뛰어든 과학기술인들이 과학계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여러 이슈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을 지냈던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도 그중 한 사람으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소속으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우리 과학기술계의 현안을 알리고 문제 등을 지속해서 제기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정책이 최근 과학기술은 외면하고 정보통신기술 (ICT)에만 치중한다는 주장이나 기초연구사업 연구비 늑장 지급 등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 지원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오 의원이 지난주 내놓은 자료 가운데는 우리나라 과학 교육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게 있어 눈길을 끌었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수능 시험에서 응시자가 기초과학의 토양이라고 할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Ⅱ를 선택한 비율이 5년 사이에 12~46% 줄어들었다. 2012학년도와 2016학년도 수능시험 과학탐구 영역 응시자를 비교한 이 자료를 보면 화학II 는 5.58%에서 0.67%로 줄어들었다. 이는 2012년도의 전체 수능 응시자 64만8000여 명 중 3만6238명에서 2016년에는 응시자 58만5000여 명 가운데 고작 3936명에 그치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이 깊이 있게 원리를 따지기보다는 암기를 통해 쉽게 점수를 딸 수 있는 과학탐구Ⅰ에 쏠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과탐Ⅱ를 선택하는 학생이라도 화학이나 물리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여겨지는 생물과 지구과학 쏠림이 여실하게 나타난다. 세상의 이치를 궁리하고 탐구하는 과학의 의미를 따라가기보다는 암기와 점수 우선인 박제된 과학 교육의 결과이다. 절대적인 수치를 따져보더라도 학생들이 가장 어렵게 여기는 물리Ⅱ 응시자와 가장 쉽게 여기는 생물Ⅱ의 응시생 수의 비율이 2012학년도 4배가량에서 2016학년도에는 7배가량으로 더욱 늘어난다. 모든 학생이 어려운 과탐Ⅱ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지만 이런 어려운 과학 과목 기피는 우리나라 이공계 학생의 전반적인 실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게 오 의원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쉬운 과학'을 좇는 건 어려서부터 '과학은 어려운 것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쉬운 과학'을 추구하는 책과 교육, 관련 프로그램의 홍수에 접했기 때문은 아닐까. 과학은 어렵기 때문에 무조건 쉽게 보여줘야 한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강박증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쉬운' 과학만화, 과학 대중강연, TV 프로그램이 줄줄이 나왔다. 또 그 영향으로 과학은 '아이들이 하는 것' 또는 '전문 과학자가 하는 것'이 돼버렸다.
일반 성인이 과학을 접하는 건 아이들을 과학관에 데려다줄 때뿐이라고 할 정도로 괴리감이 커진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과학 원리를 배우는 공간인 과학관도 이런 '쉬운 과학'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체험형 과학관이 세계적 흐름이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관은 체험형 전시물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과학자로의 꿈을 키우는 자극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이를 '쉽게 쉽게' 체험하는 시설도 필요하지만, 그 원리 자체를 파고들어 궁리할 수 있는 시설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과학은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것과 함께 과학은 흥미로운 영역이라는 걸 느끼도록 해야 한다.
개관을 준비 중인 한 과학관 관장의 말은 그래서 요즘 같은 쉬운 과학 전성시대에 던지는 여운이 크다. 그는 쉬운 과학이 옳지만은 않다며 일반인을 상대로 과학 실험에 관련된 수학 방정식 풀이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단다. 그러면서 실제 실험에 참여하거나 과학자와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식으로 기존 과학관의 체험과는 다른 진짜 과학을 체험하도록 하겠단다. 기초를 다지고 궁리하고 탐구하는 과정과 즐거움을 알려줘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 방식이나 해결 방법을 배울 수 있을 터이다. 별 의미 없이 단편적인 '쉬운' 정보는 인터넷 공간에 수도 없이 떠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독자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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