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장 곽재우는 홍의장군으로 통한다.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의병을 조직한 그는 붉은 갑옷에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백마를 타고 다녔다. 영남 유학의 거두인 조식의 제자이자 외손녀 사위였으니 그의 기개를 짐작할 만하다. 의병들에게 홍의장군의 붉은 갑옷과 함께 붉은 머리띠는 리더십과 단결심의 상징이었을 터. '저런 지도자라면 목숨을 맡겨도 좋다, 죽을 힘을 다해서 왜적과 싸우자'라며 똘똘 뭉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니 왜적과 맞붙어 연전연승할 수 있었으리라.

세상은 변했고, 머리띠는 남았다. 대한민국에서 두 개의 머리띠가 서로 다른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 27일부터 무기한 전면파업에 들어간다.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2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총파업승리'라고 적힌 붉은 머리띠를 매고 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을 했다. 붉은 머리띠는 추투(秋鬪)의 결의에 다름 아니다.

또 다른 머리띠는 예기치 않은 장소와 상황에서 나왔다. 지난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2016년 장차관 워크숍이 열렸다. 2013년 3월 이후 3년6개월 만에 현 정부 장차관급 고위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정 해법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워크숍을 마친 뒤 이어진 만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 골프가 아닌 국내 골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차관들이 내수 경기 활성화에 앞장서자며 이렇게 화답했다. '내수진작 머리띠를 두르고 골프장으로 가자'.

박 대통령은 해외 골프 등 지난해 해외에서 쓴 돈이 26조 원에 달하니 국내에서 골프를 하면 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였고, 장차관들도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자비 골프'에 의견을 모으며 '골프를 친 뒤 인증샷을 올리자' 등으로 화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

이날 새벽 야권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전격 처리했고, '북핵 위기와 어려운 경제 여건 등 비상상황'의 해법을 논의하는 현 정부 들어 두 번째 워크숍이라는 무게감을 고려할 때 마뜩잖다. 장차관의 머리띠는 '그들만의 리그' 상징일 뿐이다. 그들의 리더십을 믿고 똘똘 뭉쳐 비상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두 개 머리띠가 상징하는 세계를 건너지 못할 강이 가로막고 있는 듯하니 더 큰 문제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