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랬다. 단 6명만 들어가는 곳인데, 이 시설의 개소식이 과연 기삿거리가 될 것이냐고. 속을 들여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거기에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2세와 관련된 모든 게 집약돼 있었다. 지난달 6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서 문을 연 '한국 원폭 2세 환우 쉼터'에 대한 이야기다.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있는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린다.
이 쉼터는 2010년부터 국내 원폭 2세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해 온 합천평화의집이 8000만 원 정도 들여 마련했다. 정부는 물론 기업의 지원도 없었다. 쉼터 설립 기금은 수년간 민간 후원자로부터 5000원, 1만 원씩 한 푼 두 푼 모은 것이다. 방 3개와 상담실 1개, 부엌 거실 응접실과 화장실 2개를 갖춘 200㎡의 1층 건물로, 수용 인원은 6명이다. 현 여건상 아무리 공간을 늘려도 최대 수용 인원은 10명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국내 원폭 피해자 2세는 얼마나 될까. 등록자 기준으로만 1300명이다. 쉼터가 있는 합천에만 600명 넘게 사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 등 탓에 등록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국내 원폭 피해자 2세는 1만~2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6명이라니…. 이게 바로 문제의 초점이다. 오죽하면 합천평화의집이 입소 대상자를 가려내는 데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겠는가. 각종 암과 시각·지적 장애 등을 앓아 도무지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사람 중 '고르고 고른 뒤' 우선해서 뽑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71년 만인 올해 5월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 특별법마저 부실하기 짝이 없는데, 원폭 피해자 2세는 아예 '피해자' 범위에서 제외돼 있다. 지원 대상이 아니다. 거꾸로 보면 이번에 합천에서 문을 연 원폭 2세 쉼터의 의미는 전혀 작지 않다. 이 쉼터는 특별법 개정을 끊임없이 촉구하는 중심이 될 것이므로.
다시 고 김형률(1970~2005) 씨를 생각한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반핵평화인권운동가였다. 그는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만든 뒤 초대 회장을 맡아 원폭 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과 원전 반대 운동에 온몸을 바쳤다.
그는 갓난아기 때부터 온갖 병치레를 겪었다. 중학교 1학년 이후에는 폐렴 탓에 병원 입·퇴원을 밥 먹듯 했다. 그러다가 2002년 원폭에 피폭된 후유증의 대물림 때문인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6살의 나이로 방사능에 피폭된 뒤 악성 종양 등에 시달렸다. 김형률 씨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은 두 살도 되기 전 폐렴으로 숨졌다. 그는 2002년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이 원폭 피해자 2세라고 밝혔다. 피폭 후유증의 대물림 문제를 우리 사회에 처음 제기했다.
그는 가고 없지만, 크나큰 '유산'이 남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 원폭 피해자 2세 일부의 기초 현황과 건강 실태를 조사해 이를 이듬해 2월 발표했다. 원폭 피해자 1세와 2세 모두 일반인보다 발병률이 매우 높다는 게 명백한 통계 자료로 드러났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원폭 피해자 지원 특별법도 김형률 씨에게 힘입은 바 크다. 그는 2005년 5월 29일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한국 원폭 피해자와 원폭 2세 환우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평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는 이 법안에 원폭 피해자 2세 실태 조사, 의료 지원, 진상 규명과 기념사업 등을 담았다.
그런데도 '2016년 특별법'에는 원폭 피해자 2세에 대한 내용이 없다. 10년 넘게 김형률 씨와 시민단체가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이것이다. 한마디로 원폭 피해자 2세는 '관심 밖'이다. 개인적인 천형으로 치부하겠다는 것이다. 원폭 피해자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당사자와 가족에게 떠넘기는 처사다. 익히 알려진 핵 방사능으로 말미암은 유전병마저 외면하겠다는 것이다. 김형률 씨는 이를 두고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이는 제20대 국회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몫이다. 원폭 피해자 2세에 대한 지원 등을 담을 법 개정 작업이 시급하다. 원폭 피해자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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