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게 아닌가벼!" 엉터리 의사가 무작정 환자의 배를 열어보고는 예상과 다르자 이런 말을 했다던가? 버전은 변주한다. 길도 없는 험한 산을 대장이랍시고 일행 앞에서 한참이나 의기양양 이끌고 가더니 "어? 이 길이 아닌가벼!"라든가, 의욕만 넘친 요리사가 갖은 양념을 마구 들이부은 뒤 제 입에 찍어 넣어 보고는 "어? 그 맛이 아닌가벼!"라고. 다시 배를 꿰매면 되지 않느냐는 의사,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면 된다는 인솔자, 버리고 다시 요리하면 된다는 요리사 모두 당사자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무사태평이지만 당하는 사람은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한진해운 사태를 보면서 문득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혹시 '아니면 말고'식의 모험주의적인 선택을 한 건 아닐까. 한진해운이라는 지진이 터졌을 때 부산과 대한민국 경제에 미칠 파장, 쓰나미의 높이와 충격이 얼마나 클지를 정확히 예상이나 하고 뇌관의 핀을 뽑은 건가.

불안은 악몽이 되고 현실로 닥치고 있다. 무능, 무지, 무책임, 무감각, 무모함 등이 뒤범벅 된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한진해운 대주주가 대한민국호라는 거대한 배를 바다 위에 미아로 내팽개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세계 곳곳에서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으면서 항구에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바다의 노숙자가 돼버렸다. 세계 11위 경제 대국이 물건 하나 제때 배달하지 못해 믿을 수 없는 운송업자이자 불량국가 처지가 됐다.

한진그룹은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였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자율협약 신청 발표 직전 주식을 처분해 먹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조양호 회장도 자기 돈 아까운 것만 생각했지 한진해운을 살릴 생각은 없었다. 조 회장은 4000억 원 이상은 내놓을 수 없다고 버텼다.

채권단의 무책임도 하늘을 찌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추가 자금지원을 거절함으로써 한진해운에 연결된 산소호흡기를 매몰차게 떼버렸다. 그러나 과거 채권단의 '전과기록'을 들춰보면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는다. 비리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대우조선해양에 채권단이 쏟아부은 자금만도 4조4000억 원이었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한진해운에 최대 6000억 원, 최소 3000억 원만 투입하면 된다는데도 '국민의 혈세를 쓰는 입장에서' 그럴 수 없다며 자금 파이프를 잠갔다. 혈세를 무작정 지원하라는 게 아니다. 제대로 쓰라는 거다. 언제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 결정에 따라 돈을 물 쓰듯 해놓고 이제 와서 알뜰한 척 수전노 코스프레를 하느냐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한진해운 직접고용 2000여 명을 비롯해 관련 업계 최대 1만1000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이미 부산에선 실업대란이 시작됐다. 또 매년 17조~18조 원의 손해가 예상된다. 당장 한진해운이 전 세계에 최대 1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5조6000억 원어치의 화물을 운송하지 못해 줄소송을 당할 처지다. 3000억 원으로 해결할 일을 매년 20조 원 가까이 손해 보게 생겼으니 이런 황당한 계산법이 어디 있나.

무엇보다 국내 1위 세계 7위 국적선사가 공중 분해될 위기에 몰리면서 국가 신인도는 물론 전 세계 물류가 대혼란에 빠져버렸다. 40년 걸려 키운 국적선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생겼다. 현재 미 중 일 등 23개 국가, 44개 항만에서 79척의 선박이 오도 가도 못하고 항구 밖에 둥둥 떠 있다는데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국적선의 해외 압류는 한국 영토가 압류된 것과 같다"는 한진해운 노동조합 이요한 위원장의 호소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무역업체와 제조업체 모두 날벼락을 맞고 있고 영세한 한진해운 납품업체는 도산위기에 몰렸다"는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의 절규에 가슴이 무너진다.

정부는 있는가. 정부는 무엇하는 존재인가. 세월호 참사에 이어 한진해운 사태를 바라보면서 다시 묻는다.

한진해운 사태는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국적 선사 하나 없어지는 데 웬 호들갑이냐는 듯이 반응하는 건 한심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가 이해당사자 간의 고통 분담만 강조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것은 정부의 역할을 포기한 거다. 서별관 회의 학습효과 때문에 책임지기 싫어 그랬다면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복지부동 태도다. 정부 어느 곳에서도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았고, 폭탄 돌리기와 책임 떠넘기기만 요란하다. 이제 와서 부산항이 마비되고 전 세계 물류가 멈추자 지원을 하네 어쩌네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한심하고 비겁하다. 내 눈에는 마치 배부터 째 놓고는 "어? 이게 아닌가벼!"라는 돌팔이 의사의 변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한진해운 사태를 원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 살려야 한다. 한진해운이 망하면 부산이 망하고 인천과 광양이 도미노로 무너진다. 곧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대한민국을 덮치는 건 시간문제다.

논설실장 so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