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 분들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뭐라? '소혀구이맛 사이다'라고? 왜? 소혀구이맛 사이다를 만드는 이유가 뭔데? 그냥 소혀를 구워먹으면 되잖아? 그런데 이게 그 지역 특산물이란다. 이름하여 '규탄사이다(牛たん サイダ)'. 일본어는 서투르고, TV 화면은 휙휙 지나가니 규탄사이다가 정확히 일본 어느 동네 특산물인지는 알아내지는 못 했다. 규탄은 우설(牛舌), 즉 소혀를 뜻하고 이 소혀를 구워 차려내는 소혀구이는 센다이 지역의 명물이라 하니 그냥 그쪽 어디겠거니 했다.
이어 소개된 것은 즌다(ずんだ) 사이다. 이것도 일본 어느 동네 특산품이란다. 즌다는 에다마메(풋콩) 등을 으깨 만든 푸른색의 걸쭉한 식재료. 햐! 저건 어떤 맛일까? 나가사키의 명물이라는 카스텔라 사이다는 정말 맛있는지 방송 진행자(마츠코 디럭스라는 유명한 여장남자 방송인이었다)는 맛을 보자마자 "오이시이(맛있어)!"를 연발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두리안 사이다, 블랙 사이다…. 물론 소혀구이맛 사이다도 한 자리.
위 장면은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일본 나라(奈良)에 여행갔다가 호텔 방에서 TV로 본 일본 지역민방 프로그램의 일부다.
진행자와 출연자는 꽤 많은 종류의 지역 특산품 사이다를 가져다 놓고 티격태격해가며 방송을 이어갔다. "이걸 무슨 맛으로 마시란 거냐?" "이건 정말 맛있군요" "카스텔라 사이다에선 정말 카스텔라랑 똑같은 맛이 나는군요"…. 그러다 출연자가 한마디했다. "일본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이다는 650종에 달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246가지 서로 다른 치즈가 있는 나라(프랑스)를 다스린다는 게 누구인들 쉽겠소?"하고 하소연했다는 사연을 쉽게 찾을 수 있다(진짜로 246가지라고 했는지는 원본을 찾아봐야 확인하겠는데 그 원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말은 여러 각도에서 풀이할 수 있지만, 밑바닥에는 '다양성이 곧 저력'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믿는다.
일본 지자체나 마을에서 만드는 '지역 사이다'(지역문화나 지역언론이 아니라 지역 사이다라는 표현을 쓰게 될 줄이야) 종류가 650가지가 넘는다는 사실 또한 비슷한 의미로 다가왔다.
때가 리우 올림픽 직후였던지라, 아주 만약에 올림픽에 '창의적이고 맛있는 사이다 만들기' 같은 종목이 들어간다면 저런 나라한테 쉽게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기는 했다. 하지만 일본 사이다, 프랑스 치즈 이야기는 다양성이란 주제를 자꾸 생각하게 했으므로 초점은 하나로 모였다. 사회적 저력의 원천이 되는 다양성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몇 번을 생각해도 그 요건은 최소한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다름 인정하기, 상대 존중하기, 그리고 자유. 이 세 가지 요건을 개인의 차원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기풍으로 확장하는 엔진으로 자치와 분권이 합류한다.
쉽게 말해, 소혀 숯불구이 맛을 사이다에 넣겠다고 누군가 끙끙거리고 있어도 그걸 '또라이짓' 취급하지 말고 그냥 좀 놔두는 데서 시작하자는 얘기다. 혁신이란 게 원래 그러다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그 힘이 사회를 바꾼다.
요즘 우리 사회 분위기를 보면 자치, 분권, 자유, 다름 인정하기, 상대 존중하기 같은 가치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회적 의제에서 사라졌다. 이들 가치는 한때 분명히 한국에서 아주 중요하게 널리 적극적으로 토론하던 주제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런 가치가 이미 우리 사회에 정착해서 의제에서 사라진 건 확실히 아니다. '위에서' 소통이 안 되거나 아예 관심이 없으니 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는 것이다. 그 와중에 활달하고 자유로운 기운을 사회에 불어넣던 산물인 다양성은 희생된다. 객지에서 '사이다 방송'을 보면서 떠올린 한국 상황은 이처럼 사이다의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그 나라엔 전통주도 맥주도 도시락도 종류가 엄청 많다는 건 듣고 봐서 알고 있었지만, 여행 중 우연히 접한 '지역 사이다 650종' 정보는 색다른 힘으로 관심을 끌어당겼다. 생각지 못한 다양함이었다. 남의 나라 사이다에서 우리나라 다양성의 형편을 떠올린 심사는 솔직히 복잡했다.
거 참! 소혀구이맛 사이다라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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