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던 탓에 한밤에 들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반갑다. 열어둔 창문을 통해 새벽에는 선선한 바람이 스친다. 며칠 전 다녀온 경남 산청의 고향집 길가 대추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대추가 영글고, 논에는 일조량이 많았던 덕에 나락이 잘 여물고 있었다. 처서가 지나서인지 가을이 곁에 있는 듯하다.

지난 6월 부산 기장군청에서 부산농협의 4개 법인 대표와 기장군지부장이 기장군 관내 5개 마을 대표를 만나 명예이장 위촉식을 했다. 마을발전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농산물 모형장식으로 빙 두른 밀짚모자를 선물 받았다. 필자의 사무실에는 '농업인이 행복한 국민의 농협'이라는 농협의 비전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고 그 위에 이 밀짚모자를 걸어두었다. 볼 때마다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삼복더위가 시작되던 지난 7월에는 명예주민이 된 직원들과 함께 기장군 철마면 와여마을을 찾았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하며 담소를 나누고는 마을공동시설을 둘러보며 정취도 느끼고 청소를 하는 등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중복이 지나고 매미소리 요란하던 7월 말 와여마을 대표들이 고맙게도 답례로 특산물인 옥수수를 삶아 한가득 싣고 부산농협을 찾아왔다.

농협은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어려워진 농촌을 보호하고자 '신토불이(身土不二)' '농도불이(農都不二)'에 이어 2003년부터 '1사1촌(一社一村)' 운동을 벌여 왔다.

올해 5월 현재 1사1촌 자매결연은 1만 쌍 넘게 체결했지만 실제로 꾸준한 교류를 하고 있는 곳은 20% 남짓하다. 이러한 문제가 지적되면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농촌사랑운동이 바로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다.

농촌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탓에 오랜 역사가 쌓인 지역공동체인 농촌마을이 점점 활력을 잃고 있다. 농촌마을의 해체는 아름다운 농촌경관의 훼손은 물론 소중한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더 나아가 일본의 전 총무장관 '마스다 히로야'가 그의 저서 '지방소멸'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시의 저출산과 고령화로 이어져 결국 공멸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섬뜩함마저 들게 한다.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는 도시와 농촌의 상생을 위하여 도시민의 마음에 농촌마을을 아로새기고 그 마을의 개성을 가꾸어 활력을 불어넣자는 운동이다. 마을의 개성을 가꾸는 일은 특유의 자연환경과 문화가 어우러져 사람들에게 주는 쾌적함을 뜻하는 어메니티(amenity)를 가꾸는 일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농촌 어메니티 개발로 활성화한 농촌체험관광이 농외소득의 꾸준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농촌관광매출은 약 1000억 원에 이르며 870만 명이던 농촌체험마을 방문객이 올해는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꼬불꼬불한 길과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 지역 음식을 상품화하고 구석구석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 체험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해외 유명 관광지를 찾아오고 있다. 프랑스의 리버빌레,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스위스의 루체른, 일본의 유후인 마을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마을 만들기'는 결코 도시화가 아니며 자연경관을 아름답게 보존하고 가꾸면서 농촌을 운치 있게 다듬고 세월이 품은 이야깃거리를 찾는 방향으로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명예이장과 명예주민 즉 기관이나 기업체의 CEO를 비롯한 직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꾸준히 교류하면서도 마을의 특색을 가꾸기 위해 주민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핵심이 돼야 한다. 많은 기관과 기업체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가을에 기장군 철마면 들녘에는 메뚜기가 뛰놀며 황금물결이 넘실대고 겨울에는 초록의 미나리꽝에서 미나리가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오동통 살이 올라 부드럽게 휘어질 것이다. 찜통더위에도 옥수수를 삶아서 찾아온 와여마을 대표들에게 명예이장이 명예주민들과 함께 계절마다 찾아가 농촌일손돕기와 농촌체험을 하면서 마을을 가꾸겠다고 약속했다.

농협중앙회 부산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