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일련의 논쟁과 사태는 국제정치와 관련해 여러 가지 모습을 시사해 준다. 한반도에 꼭 사드가 배치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부터 사드 배치 예정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지역이기주의로 비판할 수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띤다.

더군다나 국민 보호를 위한 무기 배치에 국민을 '배제'한 결정은 정말 그 무기가 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일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일부 보수적 언론매체들과 학자들의 사드 배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사실상 그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국제정치학에서의 논의도 무기를 배치해 안보를 확보하는 행위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적극적 평화와 포괄적 안보를 주장하는 학자들이다.

적극적 평화는 한국에도 비교적 많이 알려진 평화학자 요한 갈퉁에 의해 주창된 바 있다. 이 개념의 요체는 전쟁이 없는 상태라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평화의 상태가 아니라고 보는 것에 있다. 상대방 국가에 비해 월등한 군사력의 확보를 통한 전쟁 방지는 이른바 '소극적 평화'에 불과하다. 적극적 평화론은 평화가 전쟁의 수단, 군비 확산이나 무기 증강을 통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평화적 수단', 이를테면 상대방 국가와의 협력 추구와 조화 속에서 확보된다고 믿고 있다. 특히 국가 수준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가해지는 모든 구조적인 폭력, 이를테면 사회경제적 억압과 강제, 신체적 고통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진정한 평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극적 평화가 평화학에서 출발하였다면, 포괄적 안보는 주로 안보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비록 그 출발은 다르지만, 포괄적 안보의 주요 내용은 적극적 평화와 많이 닮아 있다. 안보가 월등한 군사력에 의해 확보된다는 이전의 믿음과 환상에서 벗어나 상대방 국가의 존재를 일정하게 인정하고 자신도 인정을 받는, 일련의 신뢰 구축과정을 통해 더 확고한 국가 안보가 확보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동시에 국가의 안보뿐 아니라 인간 혹은 개인의 안보 또는 안전도 무척 중요한데, 모든 두려움과 결핍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인간의 안전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안보를 개인적 차원에서 다시 정의한다는 점에서도 적극적 평화와 재차 긴밀하게 연결된다.

심지어, 국가 안보를 위해 군사력 증강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일부 현실주의 학자조차도 군비 경쟁과 무기 확산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안보 딜레마'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한 무력 증강은 상대방 국가의 불안과 또 다른 군비 경쟁으로 이어진다는 염려다. 안보 딜레마의 관점에서 볼 때, 무기 배치와 군비 증강을 통한 국가 안보의 확보는 잠재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미국 무기 확산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의 양상이라 할 것이다. 사실상 사드 배치 결정으로 동북아시아에 또 다른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전쟁을 경험하였다면, 그 참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평화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반도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다른 적절한 대안, 이를테면 북한과의 적극적인 핵협상, 6자회담의 틀 내에서의 지속적인 대화 추구, 이를 바탕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다자간 안보협력기구 구성 등 군비 증강과 무기 확산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훌륭한 평화적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일축해 버리는 것은 이 정부의 한계와 수준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신무기 배치에 동의를 하지 않는 국민은 이 땅의 국민이 아닌 것처럼 치부하는 일부 매체의 오만함도 한심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이다.

그리고 경북 성주 군민들의 사드 배치에 대한 반발은 국가 안보의 미명이 항상 개인과 지역의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안보와 안정을 위한다는 무기 배치가 실제로 성주 군민들과 다른 국민들에게 불안정만 키워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인 안보학자들은 국가의 안보와 일반 국민의 안녕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곤 한다. 무엇보다도 적극적 평화와 포괄적 안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 사드 배치는 새로운 지역적·국가적 불안정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영국 헐 대학 정치학과 방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