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지인이 검찰청에 출두할 일이 있었다. 피의자 아닌 참고인 자격으로. 그래도 평생 경찰서 문 앞에도 가본 적이 없는 지인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사실까지는 아니지만 문밖에라도 친구가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어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런데 세상이 참 많이 변해 있었다.
형사로 10여 년 근무하는 동안 검찰청을 상시 출입했다. 경찰서의 밤이 취객들의 난동장이라면, 검찰청의 낮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는 아우성이 수시로 불거지는 곳이었다. 수선스럽기는 했어도 사람냄새 풍기고 진실과 정의를 향한 기대가 살아 있었다. 그 시절 검사의 위상은 그야말로 '영감님'이었으니 요즘의 검사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출석하는 사람이 검사실 문 앞까지 가족이나 지인과 동행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가끔은 그 대단한 영감님에게 고함치고 심지어는 멱살잡이를 하는 일도 있었다. 검사실이나 조사실 안에서의 고함은 권력이지만 문밖은 모두의 마당이었던 셈이다.
그날 검찰청 현관 검색대에서 지인은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혼자서 조사실로 향했다. 사전에 검사나 수사관이 통보한 사람이 아니면 변호사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까닭을 물으면 피의자 탈출 방지에서, 아마 테러위험까지 들먹이며 수십 가지는 댈 수 있을 것이었다.
지인은 두어 시간 조사를 받은 뒤 검찰청을 나왔다. 친절하게 대해주고 위압 없이 조사가 이뤄져 괜찮았다고 했다. 저녁에 소주잔을 기울이는데 비로소 씁쓸한 얼굴로 다른 소감을 털어놓았다. 등 뒤 자리에서도 조사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죄를 지은 사람이었는지 수사관의 고함과 비아냥거림,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오는데 그때마다 저절로 움찔하게 되고 공포감마저 들더라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옛날보다 인권상황은 훨씬 나아졌다고 듣고 있다. 그렇지만 권위를 내려놓고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소리는 수긍되지 않는다. 새파란 나이의 '영감님' 소리는 사라졌는지 몰라도 위세는 더욱 높아진 듯하고.
가까이 하는 것은 문부터 열어놓는 것이다. 나를 믿으면 돼, 하고 문을 걸어 잠근 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밖에서는 모른다면 신뢰할 수 없을뿐더러, 그 문 안의 사람에게는 근거 없이도 두려움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불어 문 안의 사람은 특권의식에 젖어들게 되고, 특히 그 안에서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상식이나 도덕과 결별하기도 쉽다.
검색대를 설치하는 이유는 흉기 따위의 위험한 물건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고도의 안전을 요구하는 비행기도 그렇게 탑승한다. 피의자 탈출이라는 것도 요즘의 최신 건물 구조에서 근무자가 태만하지 않다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사람의 일이니 혹시 사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아주 드문 가능성을 빌미로 문을 걸어 잠그고 국민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편의주의를 넘은 비밀주의와 특권 만들기일 것이다.
지인의 일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진경준 검사장의 주식문제가 불거진 처음부터 사건을 지켜보며 당사자의 거짓말도 거짓말이지만 검찰 조직 전체의 도덕감에 혀를 찼다. 이어지는 이런저런 변명에 기본적인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고, 조직의 대응도 긴장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다 말겠지, 어쩌면 뭐 이런 일로 수선을 떨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닫아건 문 안의 공유된 특권이 빚은 자신들만의 도덕 기준이 발동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민중은 개·돼지'라는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발언에 국민은 경악했고 해당 부처는 신속한 대응으로 불끄기에 나섰지만 과연 그 한 사람만의 문제일까 의심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고시(考試)는 여전히 신분위상의 변곡점이다. 무엇보다 고시에 합격하는 순간부터 사람을 가려 만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민원으로 방문한 국민이 곧바로 고시에 합격한 간부를 직접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급직 직원을 만나서 된다는 것인지 안 된다는 것인지 어정쩡한 답변만 듣고, 책상 하나 건너에 있는 그는 눈길도 안 줄뿐더러 만날 수 없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이다.
세상의 현실과 아픔에는 둔감한 채 시험과목으로 세상을 배운 뒤 합격하면 곧바로 다른 세상에 속하게 되는 사람. 가림막이 없어도 아무나 접근할 수 없고, 나이와 상관없이 직급으로 존대 받고 인사 받는 위치. 어지간한 수양 없이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우월의식을 내버리기 쉽지 않고, 엉덩이에 뿔이라도 나게 되면 자신은 1퍼센트라는 특권의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국민의 보편적 상식과 괴리되는 수많은 정책. 국민의 입장에서는 의아하고 어이없지만 기어이 자신들이 옳다며 수십 억,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며 고집부리는 일이 하나둘인가. 벌써 전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정착되기보다는 불편을 토로하는 국민이 더 많아 보이는 도로명 주소,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의 생뚱맞은 브랜드 작업, 수시로 뒤바뀌는 교육정책…. 모두가 자신은 특별히 우월하다는 '자뻑' 의식에 젖어 국민은 가르쳐야 한다는 사고(思考)의 관료들이 빚어낸 낭비와 혼란의 참사이다.
근본적으로는 관료제도의 틀을 고쳐야 한다. 고위직이 될수록 특별한 능력의 권한이 아니라 더 가까이 다가가 더 많이 듣고 고민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의 자리임을 인식하는 틀로. 그렇지만 그것은 전쟁에 버금가는 기득권과의 투쟁이 기다리는 일이니 하루 이틀에 되지는 않을 테고. 당장은 모든 정부 부처의 문부터 활짝 열어야 한다.
궁금하고 불안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면 누구라도 정부나 공공기관의 책임자를 찾아갈 수 있고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 검찰청 조사실 앞에 가족이 기다리면 수사관의 호통은 줄어들 것이고, 검사실 앞에 국민이 서성거리면 그들의 도덕 기준도 자연스레 국민의 그것과 일치하게 될 일이다.
혼란은 어떻게 하냐고? 돌직구로 답해준다. "똑바로 해봐, 혼란이 일어나나! 어깨 힘부터 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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