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항의 화두는 '세계적 불황과 항만 간 경쟁 심화 속에서, 불어닥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국가 최대 무역항인 부산항을 관리·운영하는 주체인 부산항만공사(BPA)의 우예종 사장은 올해 들어 지속된 컨테이너 물동량 감소세가 심상찮다고 보고 지난 5월 초 '비상 경영체제 돌입'을 선언했다. 1~ 5월 부산항의 누적 물동량 증감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로 세계 10대 항만 누적 평균 증감률 -1.6%를 초과한다. BPA는 비상 경영체제에 걸맞은 업무 실행을 위해 지난달 말 조직개편까지 단행했다. 지난해 12월 개편에 이은 반년 만의 추가 개편이다.
해양수산부 역시 지난달 28일 제20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첫 업무보고에서 항만 물류 분야의 심각한 위기상황을 전했다.
해수부의 보고 요지는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환적화물 감소로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세가 둔화할 것이며, 2017년까지 1만8000TEU(6m짜리 컨테이너 1개 단위)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이 5배 이상 증가하는 등 선박 대형화가 가속화되고 항만 간 경쟁도 심화해 부산항 등 국내 항만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해수부는 이날 보고에서 '1만8000TEU급 이상 컨테이너 선박의 적재능력이 2014년 27만6000TEU에서 2017년 141만1000TEU로 급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근 부산항만공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핵심 경영진에 대한 '정치권발 낙하산 인사' 논란을 살펴보고 있자면 항만 위기 상황에 대한 해수부의 정치권 보고, BPA의 비상 경영 돌입 및 조직개편 등이 모조리 공허한 메아리로 다가온다.
지난 5월 시작된 BPA 운영본부장 공모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정피아' 논란은 이달 초 민자당 부산시당 당직자 출신 인사가 공식 임용돼 업무를 시작하면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5명의 지원자 중 임원추천위원회가 5월 말 해당 인사를 1순위로 내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달 2일부터 노조위원장이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전문성 없는 정치권 낙하산 임용 반대' 1인 시위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 노조까지 나서서 반대 운동을 펼친 것은 부사장급인 운영본부장은 말 그대로 부산항의 직접적인 운영 및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 정책 개발, 항만 마케팅 등을 총괄하는 핵심 임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산항의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세계로 뻗어가는 국가 경제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자리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BPA 사장보다 더 중요한 책무를 지녔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전임 운영본부장과 마찬가지로 정치권 출신 비전문가 낙점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했었다.
이번 운영본부장 임용과 관련해 BPA 내부에서는 '소문이 사실이었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것 봤나?', '정치권 낙점 인사인데 사장인들 해수부인들 무슨 힘이 있나', '낙하산 인사 근절을 약속했던 대통령의 공약은 모두 물거품이었나' 등의 푸념들이 횡행하고 있다. 실제로 BPA 안팎에서는 새 운영본부장 모집 공고 전부터 이번에 임용된 인사의 내정설이 나돌았고, 결과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임원추천위원회의 전형, 복수 추천, 해수부 승인 등의 과정은 그저 짜인 각본에 따라 진행된 요식행위일 따름이었던 것이다.
현재 세계 항만 시장은 해운 업계 불황과 중화권 국가들의 항만 덩치 키우기, 글로벌 해운사들의 해운동맹 재편 등과 맞물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전선의 최일선에 선 BPA 직원들 사이에서 '부산항의 진짜 위기는 고질적인 정치권 낙하산 관행에 있고 부산항을 망치는 건 정치권', '비상 경영? 운영본부 최고 리더는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고 정부와 정치권은 실적 타령만 하나' 등의 자조 섞인 말이 나돌아서야 어떻게 부산항이 국가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한편에서는 우예종 사장, 차민식 경영본부장 등 BPA의 책임 있는 고위급들이 선제적으로 낙하산 인사 거부 의사를 밝히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지당한 말이다.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부당함에 대해 의연히 맞서는 공기업 수장의 '용기' 있는 모습이 많아질 때 공기업의 낡은 낙하산 관행도 없앨 수 있고, 공기업 경쟁력도 비로소 높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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