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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칼럼] 신뢰 없는 정치

진나라 법가 상앙, 백성에게 거짓말하지 않아 신뢰 받아

정치인이 믿음 못 얻고 국민을 체념 시킬 때 미래는 없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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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6-07-14 19:43:0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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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은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하지만, 원래는 중원 아닌 변방의 미개한 나라였다. 그런 진이 강국이 된 것은 효공(孝公)이 '상앙'을 등용하면서부터다. 상앙은 법가(法家)다. 그는 낡은 법을 버리고 새 법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 부국강병의 길이라 생각했다.
   
효공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상앙은 새 법을 꼼꼼히 만들었지만, 백성들이 법을 지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궁리 끝에 그는 서울의 남쪽 문에 3장(丈) 길이의 나무막대기를 하나 세우고 그 막대기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황금 10근을 준다고 방을 써서 붙였다. 그런 쉬운 일로 황금 10근을 받을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나무막대기를 북문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황금을 받았다. 나라의 약속이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새 법은 그날로 시행되었다.

새 법을 시행한 지 1년이 되었다. 새 법이 불편하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그즈음에 태자가 법을 범했다. 법은 태자에게도 적용되어야 마땅했다. 예외가 없었다. 다만 태자는 다음에 왕이 될 사람이었다. 상군은 대신 태자의 스승 둘을 처벌했다.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한 사람은 얼굴에 문신을 새겼다.

그 이후 진나라에서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백성들은 부지런히 경작해 살림이 넉넉해졌다. 산에 터를 잡았던 도적들이 사라졌고, 길바닥에 귀한 물건이 버려져 있어도 주워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이 없었다. 사사로운 싸움은 피했고 전쟁터에서는 용감했다. 진은 마침내 강국이 되었고 천하를 통일했다. 강국이 된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백성이 나라와 법의 집행을 믿었던 데 있었다.

상앙은 법가다. 법가는 법의 엄정한 집행이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법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은 인간을 통제하고 옥죄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상앙이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었던 이유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곧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이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집행된다는 것이, 상앙이 신뢰를 얻은 이유일 것이다.

법가와 대척적인 지점에 서 있는 유가(儒家)의 경우라 해도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공자의 답은 이러하다. "먹을 것을 넉넉히 마련해 주고, 군대가 든든하면 백성들이 믿는 법이지." 자공은 다시 물었다. "부득이 셋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는지요?" "군대겠지 뭐냐." "그럼 남은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는지요?" "먹을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은 모두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백성은 믿음이 없으면 존립할 수가 없는 법이지." 공자의 말은 정치의 원리를 꿰뚫는다. 정치는 곧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백성에게 신뢰를 잃으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에 그런 신뢰, 곧 믿음이 있는가? 부정적이다. 가까운 일을 보자. 얼마 전 서병수 부산시장은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하지 못하면 시장직을 내놓겠다고 공언하였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가덕도 신공항은 없는 일이 되었고, 김해공항에 활주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김해공항 확장은 분명 다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가덕도는 가덕도이고, 김해는 김해다. 가덕도는 김해가 될 수 없고, 김해는 가덕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서병수 시장은 정부에서 가덕도에 공항을 짓지 않는다고 발표한 그 날 시장직에서 깨끗이 물러났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후 서병수 시장의 말에서, 사퇴를 번복할 만한 어떤 논리적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약속한 것을 나 몰라라 하고 지키지 않는 것은 서병수 시장만이 아니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신뢰 없는 정치'는 그들의 고유한 문화가 되었다. 곧 한국의 정치는 신뢰에 바탕을 둔 정치가 아니라, 거짓에 바탕을 둔 정치인 것이다. 절대다수의 정치인은 선거 때마다 별별 호사스러운 공약을 내걸어 표를 낚는다. 하지만 일단 권력을 손에 쥐면 그것으로 끝이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말을 하면, 혹은 못 들은 척하고, 혹은 권력으로 찍어 누른다. 좀 세차게 항의할 경우 법적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신뢰 없는 정치'가 국민들 사이에 이미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치는 원래 다 그런 것인데 순진하게 왜 그러냐고 핀잔을 준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신뢰 없는 정치'는 이렇게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체념을 하고 마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또 이 점을 충분히 활용한다. 지킬 마음 애초 전혀 없는, 허황된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체념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맹자에 의하면, 아무리 높은 성, 깊은 해자를 갖춘 성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날카로운 무기와 단단한 갑옷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쌀과 곡식이 풍부하게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 사이의 단합, 곧 인화(人和)가 없으면 백성들은 그것들을 버리고 달아난다고 한다. 인화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신뢰받는 정치에서 비롯될 것이다. 정치를 신뢰한다면, 백성은 떠나지 않는다. 지킬 만한 가치가 있기에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나라를 지킨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불길한 임계선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맹자가 말한 것처럼 성도 버리고, 무기도 버리고, 식량도 버리고, 마지막에는 나라도 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러면 정치인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자신이 공언한 바를 손쉽게 팽개치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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