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요. 아기 한번 잘 키워보려고 매일 매일 가습기에다가…. 우리 아기를 내 손으로 4개월 동안 서서히 죽였어요." "아내가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더니 입원한 지 사흘 만에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너무나 원통해서 그때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하려고 했습니다."

증언은 절규에 가깝다. 피 토하듯 외치는 그들의 호소는 울음에 섞여 말이 중간에 뚝뚝 끊기고 만다.

지난 10여 년간 전국에서 갑자기 괴질환을 앓다 숨져가는 악몽 같은 일이 계속됐다. 증상은 대부분 감기 비슷했으며, 급성 폐렴으로 번졌다. 환자나 가족, 병원도 원인을 몰랐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숨을 거두자 어떤 이는 의료사고라고 여기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신고 건수는 지난달 말 기준 3698명, 사망자 701명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피해신고 접수 재개 이후 두 달 여 만에 지난 5년간 전체 신고 건수의 두 배 가까이가 몰린 것이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는 전국적으로 800만 명 이상이 사용했고, 환경단체가 예측한 잠재적 피해자는 200만 명이 넘는다. 아직도 왜, 무엇 때문에 숨졌는지 모르는 이도 많을 것이다.

죽음의 행진이 시작된 것은 2006년 3월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 중환자실에 호흡부전증 환자 3, 4명이 동시에 입원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소리가 소아과학회에서 나왔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희생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2011년에야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를 실시해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도 제품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로 개발한 건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이었다. 가습기 세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마법의 물건으로 홍보했다. 기업들도 앞다퉈 유사한 제품을 쏟아냈다. 2000~2011년에만 약 20종의 가습기 살균제가 나왔다. '유럽연합 승인을 받은 친환경 살균제' 어쩌고 하면서도 정작 살균제가 가지는 독성에 대해 기업들은 무관심했다. 그들의 관심은 돈벌이뿐이었다.

이럴 때 정부라도 제정신을 가졌어야 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SK케미칼로부터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의 흡입 독성 등을 조사한 '유해성·위험성 보고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죽음의 행진은 1996년 스톱시킬 수 있었다. 고용부의 브레이크는 사건이 불거진 뒤인 2011년에야 작동했다.

환경부도 엉터리 대열에 합류했다. 2003년 한 업체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신청하면서 분명히 '스프레이, 에어로졸 제품 등에 첨가'하겠다고 했는데도 엉뚱하게 피부와 경구 독성만 평가하고는 '유독물이 아니다'고 고시했다. 결국 PGH를 원료로 한 '세퓨'가 만들어지고 이 제품으로 14명이 숨졌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헛발질도 어처구니없긴 마찬가지다.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여부는 조사하지 않고 용기를 일정한 높이에서 떨어뜨리고는 내용물이 새지 않는지만 조사했다. 그리고는 '안전'마크를 부여했다.

살균제의 위험성이 표면화되고서도 정부 부처의 무책임한 행태는 멈추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공산품이니 산업부 몫이다", 산업부는 "화학물질이니 환경부 소관이다", 환경부는 "폐 손상이니 복지부 일이다"고 떠넘겼다. 세금을 내서 이런 정부를 운영해야 하는지,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봉급을 줘야 하는 건지 회의가 든다.

정치권도 다르지 않았다. 가습기 피해자에 대한 구제법률안을 놓고 교통사고 피해자나 범죄 피해자와의 형평성을 거론하며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에서는 어쩌면 이렇게 세월호 참사 이후 대처방식과 닮았는지 모르겠다. 검찰도 굼떴다. 차일피일 수사를 미루고 소극적으로 하다 올해 들어서야 박차를 가했다.

전문가들도 한통속이었다.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옥시에서 돈을 받고 유리한 보고서를 써 줬다. 연구윤리나 학자적 양심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청부업자처럼 행동했다. 옥시를 변론했던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보고서도 낯뜨겁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받을 동안 추적보도를 게을리 한 언론도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습기 피해자가 비명을 지르고 죽어가면서 SOS를 외쳤지만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가끔 경고음이 울렸지만 위험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기에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비극을 맞을 수밖에 없다.

국회 가습기 살균제 진상 규명과 피해구제를 위한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 참사다. 이제라도 여야가 유불리를 떠나 진상규명과 피해구제에 나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논설실장 so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