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곳에 가든 여행을 하다보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동남아로 여행을 떠났다면 그동안 듣도 보도 못했던 열대과일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리게 마련이다. 두리안을 비롯해 망고스틴, 아보카도, 파파야, 구아바, 리치 등 차고 넘치는 게 과일이다. 더운 나라의 과일이라고는 바나나 정도를 연상하던 여행객들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다.

동남아 사람들은 열대과일마다 별명을 붙여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표적인 게 '열대과일의 왕'이라는 두리안이다. 좋지 않은 냄새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에는 먹기를 꺼리지만 막상 입에 넣어보면 달콤한 맛에 반하게 된다. 요즘 국내 대형마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망고스틴은 '열대과일의 여왕'이라 불린다. 또 과일로서는 드물게 불포화지방산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아보카도에는 '숲 속의 버터'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파파야의 별칭은 '천사의 열매'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처음 먹어본 뒤 감탄을 하며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 이런 열대과일은 현지가 아니면 제대로 맛보기 힘들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거니와 수입산은 가격이 비싸 소비자들이 선뜻 손을 내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국내에서 아열대 작물의 생산이 급격하게 늘고 있어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집계를 해보니 지난해 국내 농가의 열대과일 생산량은 1174t으로 전년(769.6t)보다 52.5%가 증가했다. 재배면적도 106.6㏊로 2014년(58㏊)에 비해 크게 불어났다. 원인은 한반도 온난화다. 기상통계에 따르면 100년 사이 우리나라 평균 기온은 1.8도가 높아졌다. 이런 이유로 열대과일 재배는 기온이 높은 제주도에서나 부분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상식이 깨졌다. 이제는 내륙지역에서도 열대과일을 키울 수 있다. 김천에서 패션프루트를 생산하고 여수에서는 망고를 기른다.

농가소득 다변화 차원에서 보면 열대과일 생산 증가는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 쌀 소비량이 계속 감소하는 등 우리나라 농업 구조가 전통적인 곡물 재배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반면 환경적인 시각으로 해석을 하자면 한반도 온난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열대과일 재배와는 별개로 따뜻한 날씨 탓에 우리나라 토종 과일의 재배 한계선도 현재 계속 북쪽으로 올라 가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이러다 보면 앞으로는 강원도가 사과 주산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생태계 변화에 대해 숙고가 필요한 시기가 지금인 것은 분명하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