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 일본 국영방송 NHK가 '노인표류-노후파산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특집방송한 내용을 담은 책이 국내에 번역소개되면서 '노후파산'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은 노인에게 천국인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런 일본에서 65세 이상의 홀몸노인 600만 명 가운데 200만 명 정도가 파산상태에 빠져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노후파산에 빠지는 사례를 살펴보면 우선 연금수입만으로 생활비가 크게 모자라는 경우이다. 퇴직연금이 없는 기업에 종사했거나 자영업자, 농업종사자인 경우 받을 수 있는 연금이 국민연금밖에 없다. 그런데 연금수령액은 많아야 우리 돈으로 65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부부가 같이 살고 있고 건강할 때는 문제가 안 된다. 두 사람의 연금을 합하면 130만 원 정도 되고, 어떤 일을 해서라도 어느 정도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가 사별하거나 이혼하면 연금액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병이라도 나면 일도 할 수 없을 뿐더러 병원비, 간병비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보유주택을 팔아 생활비에 보태보려고 해도 대부분의 집값이 크게 떨어져 있다. 저축한 돈을 헐어 쓸 수밖에 없고 그 돈이 바닥나면 노후파산이 현실화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노후파산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아직은 고령화의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노후파산 문제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후파산에 대한 대비수준은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더 부족한 상황이다. 우선 평균수명이 남자 79세, 여자 85세로 일본(남 81세, 여 87세)에 버금가는 초장수 국가이다(2014년 기준). 노후싱글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속도 또한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 65세 이상 고령자 중 배우자와 사별하고 자녀와도 같이 살지 않는 이른바 홀몸노인이 전체 노인의 21%에 해당하는 144만 명에 이른다(2016년 1월 현재 추산치).

노후자금 준비실태는 더 심각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가계금융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가구당 평균 총보유자산은 4억3000만 원 정도이고, 이 중에서 가구당 평균부채 8000만 원을 뺀 순자산은 3억50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50대 후반에 3억5000만 원 정도의 순자산을 갖고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중에서 살고 있는 주택가격 평가액이 3억2000만 원 정도이다. 보유금융자산은 30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3000만 원으로 어떻게 30~40년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연금은 어떤가? 학교교원과 공무원을 제외하면 연금수입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고령세대가 거의 없다. 우선 60세 이상 고령자 중 국민연금 수급대상자는 31%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월 연금수령액이 40만 원 미만인 경우가 76%를 차지한다. 100만 원 이상 수급자는 3%에 지나지 않는다. 모자라는 금액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급자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예전의 부모처럼 자녀의 부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0세 시대의 노후설계를 할 때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최소생활비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가 같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일이다. 가정주부가 30세부터 60세까지 국민연금을 임의가입하면 65세부터 세상 떠날 때까지 매월 46만 원씩 받을 수 있다. 물가가 오르면 수령액도 그만큼 늘어난다. 직장인은 퇴직연금에도 가입해야 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연금저축과 연금보험과 같은 개인연금에 가입하여 보완한다.

현역시절에 연금을 통한 노후준비를 못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축해둔 목돈이 있다면 이를 즉시연금에 가입하여 매월 생활비를 받아 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모아둔 목돈으로 부족할 경우 살고 있는 집을 금융기관에 맡기고 생활비를 받아쓰다가 세상을 떠날 때 정산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는 주택연금이다. 물론 자식에게 집 한 채는 남겨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100세쯤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식에 집을 물려줘 봐야 이미 그 자식은 70세쯤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물려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