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마지막 토요일. 2026프로야구 개막전이 '부산롯데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롯데와 부산시는 3만 명을 수용하는 구장을 새로 지어 이날 개장식과 함께 첫 경기를 치른다. 구장을 꽉 채운 부산 야구팬들은 최첨단 장비와 쾌적한 시설 속에서 야구의 재미를 만끽한다. 10년 전 구장을 신축한 삼성이나 KIA와 비교해 '짠돌이 롯데'라고 욕하던 시민들도 열렬한 응원을 보냈고 그해 롯데 자이언츠는 새 구장의 기운을 받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광주KIA챔피언스필드와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면서 아쉬운 마음에 그려본 10년 후의 상상도다.
다 아는 얘기지만 롯데 자이언츠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사직구장의 주인은 롯데가 아닌 부산시다. 롯데 구단이 시와 계약을 맺어 위탁 관리하고 있다. 구단이 매년 10억 원 정도의 위탁료를 시에 내고 있다. 양측은 지난해 말 사직구장 네이밍권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구장 명칭에 롯데를 쓰는 대가로 위탁료와는 별도로 15년간 20억 원을 지급하는 계약에 접근했다가 시민단체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없던 일이 됐다. 20억 원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낡은 조명탑 교체 비용과 탕감하는 조건이었다.
여론은 사직구장의 이름값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며 시와 롯데를 질타했다. 롯데는 결국 자기 돈 30억 원을 들여 조명탑과 화장실 등 시설을 보수했고 네이밍권 문제는 장기과제로 넘겼다.
사직구장의 위탁관리 계약이 올해로 끝난다. 연말까지 시와 롯데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스포츠산업진흥법이 바뀌어 올해부터는 최장 25년까지 장기계약이 가능하다. 부산시는 10년 정도의 장기 계약을 염두에 두고 있다. 롯데 측도 시설 보수나 개선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며 장기계약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밍권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모든 협상이 그렇듯이 문제는 돈이다. 위탁료를 얼마로 할 건지 양측의 밀당이 시작될 것이다. 시민사회도 이번에는 제값을 받아야 한다며 벼르고 있다.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중의 입장료 수입과 30여 개의 매점운영권, 구장 내 광고료를 구단이 가지면서 한 해 10억 원의 위탁료는 너무 헐값이라는 게 시민사회의 주장이다. 이들의 위탁료 인상 요구는 일리가 있다. 여태까지는 위탁료 산정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 부산시는 원가계산을 롯데가 건네준 자료에 의존했다. 롯데가 원하는 대로 위탁료가 도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시는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롯데와 재계약에 앞서 위탁사용료 산정을 위한 원가계산용역을 실시하기로 했다. 구장의 자산가치에 대한 감정평가도 새로 하겠단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면 계약은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시와 롯데가 놓쳐서는 안 될 게 하나 있다. 새 구장 문제다. 한동안 북항에 짓는다는 얘기가 나돌더니 어느 순간 쑥 들어가 버렸다. 사적으로 구단 고위 관계자와 얘기할 기회가 있어 물어봤더니 구단에서는 북항의 북자도 꺼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디서 나온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싼 땅에 야구장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어쨌거나 새 구장 논의는 서두를수록 좋다. 시와 롯데가 10년 계약을 한다면 계약 기간이 끝나면 사직구장의 나이는 40년을 훨씬 넘는다. 그런 구장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하라는 건 고문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화장실을 수리했지만 고약한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배관이 낡아서 그런 것이다. 장기계약은 그것대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신축이든 재건축이든 새 구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새 구장 만들기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광주나 대구의 예를 보더라도 1000억 원이 넘게 소요되는 대형 사업이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3~4년은 족히 걸린다.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도 10년 뒤에 완공하기는 빠듯하다.
열광적이기로 이름난 팬들을 생각한다면 부산시와 롯데는 구장문제를 장기계약으로 어물쩍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마스터플랜을 내놓아야 한다. 이왕이면 시와 롯데그룹이 공동으로 '통 큰' 플랜을 제시하면 어떨까. 신공항 때문에 천불 나는 시민들에게 속 시원한 '사이다'가 될 터. 하긴 지금 롯데그룹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입도 벙긋하기 어려운 노릇이니 답답하기는 하다. 그래도 준비는 해야 하는 게 맞다.
부국장 겸 스포츠부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