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경대에 천경자 기념미술관 임시전시실이 들어선다던데 언제 문을 여는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임시전시실 개관 일정을 말해줄 수 있는 이는 부경대에서 아무도 없다.

'국립' 부경대의 관료주의적이고 미숙한 처사 탓에 기증자와의 신뢰관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경대는 애초 지난 4월 26일부터 천경자 화백(1924~2015) 기념미술관(본지 지난해 12월 12일 자 1면 보도) 설립 전 단계로 교내 박물관이 있는 청운관에 임시전시실을 운영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개관식 하루 전인 25일 밤 9시가 넘어서 부경대에서 급하게 전화가 왔다. "항온·항습기 이상으로 내일 개관식이 무기한 연기됐다. 개관식 기사를 내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불가피한 사고 정도로 생각했다. 미술관의 기본인 항온·항습 시스템도 없는 환경에서 천경자 같은 국보급 예술가의 작품을 걸려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임시전시실 개관 전날 현장을 목격한 몇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천 화백의 장녀 이혜선(71) 씨가 25일 오후 임시전시실에 작품을 걸기 위해 방문했다. 그런데 소장품 등을 전시하기 위한 목조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내부가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 씨가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작품을 걸 수 있느냐"며 "혹시 환풍시설이 없느냐"고 묻자 당황스럽게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환풍시설도 없는데 항온·항습시스템이 있을 리 없었다. 그날 이 씨는 가져온 어머니의 작품을 모두 가지고 돌아갔다. 개관이 무기한 연기된 속사정이다.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은 "작품을 회수해 돌아가는 이 씨의 마음을 돌리려면 총장이라도 당장 달려와야 하는데, 다른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며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관계자들도 돌아가는 이 씨를 멀뚱히 보고만 있더라"고 전했다.

부경대는 이달 초에야 항온·항습·환풍 시스템 설치 공사에 착수했다. 공사는 다음 달 중순 끝날 예정이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다고 이 씨가 작품을 다시 준다는 보장은 없다. 부경대는 '기증협약서'를 믿고 있지만, 임시전시실 개관도 제대로 못 했는데 본 전시관 기증이 매끄러울 리 없다.

이 씨는 개인적 인연과 더불어 부경대가 '국립'이라는 점에서 기증을 결정했다. 공공에 어머니 작품을 돌려준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굴러들어온 복'이라 그럴까, '주인 없는 기관'이라 그럴까. 부경대의 처사에는 국립의 폐단인 '관료주의'만 남은 것 같다. 설상가상 부경대가 총장선거에 돌입했다. 책임자가 희미한 이 시기에 천경자 임시전시실에 대한 학내의 관심이 더 적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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