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우리나라 연구개발과 관련한 기사가 실렸다. 어지간한 연구자라면 평생에 한 번 실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네이처에 실린 건 빼어난 연구 성과를 담은 우리나라 과학자의 논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글이었다. 그것도 '아픈' 글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연구개발에 쓰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 과학계의 연구 현실과 정부의 정책결정, 노벨상 콤플렉스를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이 세계 1위다. 네이처는 우리나라의 R&D 예산이 1999년 2.07%에서 2014년에는 4.29% 수준으로 늘었지만, 성과는 그에 한참 못 미친다고 꼬집었다. 한국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수는 투자 비중이 2% 수준인 스페인과 비슷하고 영국 독일 일본의 절반 정도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내년에는 R&D 투자 비중을 5%까지 늘릴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런 비효율에 대해 네이처는 한국의 과학기술 투자의 짧은 역사, 창의적인 연구를 막는 풍토, 정부의 주먹구구식 정책 결정을 이유로 꼽았다. 특히 비단 과학기술 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정책결정이 너무 성급하게 근시안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은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바꾸지 못하던 것이기에 가슴 아프다.
최근의 예로 인공지능 분야를 들 수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기념비적인 대국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발 빠르게 2020년까지 5년 동안 1조 원을 투입하겠다는 인공지능 분야 연구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사회적으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하나의 사례만으로 '인공지능은 미래 먹을거리'라고 당당하게 판정내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건 우리나라에 인공지능 분야를 연구할 과학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관련 분야 연구자 사이에서는 '인공지능 분야는 외면받은 분야'라는 말이 나온다. 인공지능 분야는 수십 년 전 개념이 정립돼 꾸준히 연구가 진행됐는데 10년쯤 전부터는 연구과제를 선정할 때 인공지능이란 말이 들어가면 '낡은' 연구라며 찬밥 신세였다는 말이다.
그 때문에 정부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이고 즉흥적으로 인공지능 분야 투자를 결정한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갈라 붙이기식 종합 연구에 대한 졸속·부실 투자를 우려하는 것이다. 또 한정된 예산에서 특정 분야로의 쏠림은 필연적으로 다른 분야의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현재 진행하는 연구 과제들에 더 집중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좋은 성과를 올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왕에 하던 거나 잘하게 밀어주라는 것이다. '네이처'도 앞의 글에서 마찬가지 지적을 했다. 한국이 과학연구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만큼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는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이든 스포츠든 반짝하는 관심만으로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는 법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연구 기반 마련과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지만 우리는 연구개발 지원뿐만 아니라 실제 이 일을 해낼 인재를 키우는 데서부터 허약한 체질을 드러내고 있다. 고교에서 이공계를 선호한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취업을 위한 방편으로 여길 뿐이다. 기초연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인재를 키우기도 어렵고 좋은 성과를 내기는 더 어렵다. 지난해 치른 2016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16명 가운데 자연계열 7명이 모두 서울대 의예과를 택했다는 건 왠지 씁쓸하다. 그 이전에도 대학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연계열 만점자 대다수가 의예과를 선택한 것은 큰 차이가 없다. 의예과가 '헬조선'을 살아가는 똑똑한 청소년의 최선의 선택인 것이 우리 현실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으로 키울 벤처를 창업할 요람이 될 공과대학이나 자연대학을 선택할 만점자는 없는 것이다.
지난 4월 경기 지역 한 고교 졸업생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포함한 11개 대학에 동시에 합격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또한 서울대 의예과 수시전형에서 탈락해 다른 길을 모색한 결과란다. 그 후 그가 미국의 어느 대학을 선택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대학 진학 후 인지과학과 뇌 질환 치료법을 찾는 뇌 생리학 연구자가 되고 싶다던 애초 그의 포부대로 네이처 지면을 장식할 뛰어난 연구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독자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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