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의 명칭은 때로 그 자체만으로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염색체 이상에 따른 선천적 장애인 다운증후군의 옛 명칭 또한 그랬다. 영국인 의사가 다운증후군 환자의 외모가 동양인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병명을 몽골리즘(Mongolism)이라고 지었던 것. 얼토당토 않은 이유지만 동양인을 차별하는 이 병명은 무려 100년가량이나 쓰였다. 그 이후 몽골의 항의에 학자들도 동의해 1965년 병명이 다운증후군으로 공식 변경됐다.

국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종종 있다. 사회적 편견이 심했던 간질이 그 중 하나. 간질은 뇌에서 비정상적으로 발생한 전기파가 뇌조직을 타고 퍼져 나가는 과정에서 경련성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요즘은 약물로 대부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과거 일시적인 발작 현상 때문에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상당한 불이익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간질은 2010년 뇌에 전기파가 온다는 의미의 뇌전증(惱電症)으로 병명이 바뀌었다.

요즘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치매를 두고도 병명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가 합쳐진 글자 그대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치매를 인지증(認知症)이라는 병명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이 외에도 일본에서는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습장애는 학습증으로, 알코올의존증은 알코올사용장애로 병명을 변경했다. 모두가 차별 의식이나 불쾌감이 들지 않도록 하자는 의도다.

최근 서울의 한 화장실에서 여성을 살해한 30대 남성이 앓고 있다는 조현병(調絃病) 역시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다. 정신분열병은 부정적인 명칭 때문에 마치 인격이 와해되고 극도로 퇴행된 행동을 보이는 병이라는 좋지 않은 인식이 쌓여왔다. 이에 따라 2007년부터 관련 학회 중심으로 개정 움직임이 시작돼 2011년 공식적으로 조현병으로 병명이 바뀌었다.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의 조현(調絃)은 환자 상태가 조율되지 않은 현악기처럼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잘 조율되면 정신의 부조화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병을 앓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픈 일인데 거기에 엉뚱한 주홍글씨까지 덧씌워지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이번 사건 또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때문에 질환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번져서는 곤란하겠다. 부정적인 이미지의 병명을 아무리 바꾼다 해도 오랫동안 뿌리 박힌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다음에야 별무소용이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