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사장의 '100억 원대 주식 대박' 의혹이 불거진 지 3개월이 되어간다. 처음 의혹이 불거졌을 때부터 보편적 상식으로 살아가는 국민들은 당연히 수사대상이라 여겼다. 그러나 당사자는 사표를 제출한 채 연차휴가와 병가로 여론의 화살을 비켜가려 했고, 조직은 '직무연관성' '법적 근거' 운운하며 징계절차마저 뭉그적거렸다. 징계든 수사든 당사자를 불러 조사부터 해봐야 직무연관성 유무나 처벌의 법적 근거를 판단할 수 있을 텐데 정식 소환에 대해서는 여태 명확히 밝힌 바 없다. 그렇다고 수사권을 독점하는 검찰 구성원을 다른 기관에서 불러 조사할 방법도 없으니 보편적 상식의 국민은 그저 그들끼리의 리그를 지켜봐야 할 뿐이다.
20억, 50억, 100억…. 소위 'N포 세대'로 불리며 인생의 미래마저 접는 청년은 차치하고, 성실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대부분 사람에게도 꿈의 액수이다. 그런데 그 '억' 소리 나는 돈이 구멍가게 껌값처럼 어떤 이들의 주머니를 구리게 들락거렸다. 그것도 최고의 도덕성으로 선과 악을 구별하고 벌(罰)의 경중을 판단하는, 존경하고 복종해야 마땅하다던 사람들의 리그에서.

'조국'과 '명예'를 신조로 삼는다는 군(軍)은 또 어떤가. 얼핏 지난 수년간 군 관련 신문기사만 되살펴도 훈련을 제외하면 사건사고와 비리 관련이 절반 이상이다. 현재의 적(敵)이 분명한 북한의 각종 신종무기 소식에는 축소해석이 대응의 첫째이고, 치밀한 전략도 보이지 않는 예산 타령이 마무리로 등장한다. 하지만 수십 억, 수백 억이 기본 단위인 대응무기마다 불량과 뇌물의 사슬이 끊이지 않으니 아직 '조국'과 '명예'의 별이 남아있기나 한 것인지 불안하다.

믿고 쓰는 브랜드 상품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아우성이 들려도 귀를 막고 있다가 뒤늦게 파헤치면 누구의 책임인지 아리송해 화살은 만만한 이에게로만 향한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에 오직 족(族)의 인연으로 주인 노릇을 하다가 끝이 보이면 먼저 제 주식부터 슬그머니 팔아치워 배를 채우고는 나 몰라라 자빠진다. 그러면 설거지는 또 국민의 혈세인 공적 자금이 나서야 하고, 그럴 때의 액수는 '억'도 아닌 '조(兆)' 단위로 거론되기 일쑤이다. 한 메이저 신문이 같은 구독료를 내는데도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에만 배포하는 특별판을 찍어낸 지 수년이 되었다. 당연히 비판해야 할 언론은 무슨 카르텔인지 침묵하다가 또 다른 메이저 신문도 그 행태를 슬며시 따라하기 시작한다. '지방, 너희는 그냥 그렇게 살아'의 노골적 멸시 아닌가.

일일이 거론하자면 끝도 없을 오늘 우리 사회 주류(主流)의 민낯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주류의 기득권은 인정된다. 어쨌거나 그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이니 어느 만큼의 우월적 지위는 용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득권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수반된다. 그렇다면 앞에 거론한 주류의 일그러진 모습에 그들은 어떤 책임을 졌는가. 흔히 '독재'라 말하던 그 시절부터 지난 정권까지, 그래도 책임에는 최소한의 염치가 있었다. 아마 검찰총장을 비롯해 법무부 국방부 환경부 경제부처 등의 관련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총리까지 진작 책임지고 물러났을 것이다. 수십 억, 백 억을 냉큼 삼키는 법조계도 자정의 목소리는 물론 누군가 머리 숙여 국민에게 사죄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상식도 염치도 없는 주류의 행태에 속만 끓여야 한다.

올해 4·13총선은 비주류 국민들의 작심한 반란이었다.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은 위임받은 통치권자가 아니라 권한을 위임한 비주류 국민이니 제대로 돌아보라는 엄중하고 마지막일지 모를 경고였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놀음을 계속하고 있다. '친박' '비박'도 치졸하고 부끄럽거늘 '진박'까지. 자신들은 그런 용어를 쓴 적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눈에 그렇게 보이면 그게 사실인 것이다. 착각은, 자신들의 계획이면 또 국민들은 속을 것이라는 오만함이다. 잘 포장된 누군가를 영입하면 이번에도 국민은 환상에 젖어 따를 것이고, 그것으로 권력은 연장되리라는 속셈이 빤히 보인다. 그렇지만 누구든 무대에 오르는 순간 절반의 적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니 포장은 벗겨질 것이고 환상도 깨지게 되어 있다. 그때, 더군다나 국민의 분노의 중심인 이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도 뜻대로 될까?

헛꿈을 깨고 누군가는 정신을 차려 깃대를 들어야 할 때다. '독재'는 권력의 독점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부와 국회가 서로를 독재라 비난하고 있다. 저마다 권력에 눈 뒤집혀있음을 자백하고 입증하는 꼴이다. 그나마 독재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음이니 다행이긴 하다. 상식과 염치없는 주류의 비리가 횡행하고, 책임지는 이 없는 것이 독재의 표본이다. 그 책임을 비호하는 것도 마찬가지 독재이고.

상식 있는 주류의 권력을 가지려면 그릇된 권력에 도전하는 용기가 우선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책임을 묻는 것부터 해야 한다. '법적 책임'은 법의 영역이지 정치의 영역이 아니지 않은가.

도의적 책임을 묻지 않는 자비(?)로 충성을 담보하려는 것이라면 당당하고 거세게 싸울 줄 아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은 분노하는데 나는 몰라라 딴소리하며 웃거나 엉뚱하게 토해내는 분노에 일갈하는 배짱도 있어야 한다.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트럼프의 행태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제는 트럼프에 열광하는 이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예(禮)를 숭상하는 이 나라에서 막말은 오히려 역풍이나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어쭙잖은 점잖음이나 척보다는 용기와 배짱은 열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듯싶다. 정직한 고백, 단호한 비판, 타협하지 않는 분노, 물러서지 않는 도전.

옳은 정치라면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지만 상식과 염치가 실종된 사회라면 그 정상화가 무엇보다 먼저이다. 하긴, 상식과 염치의 정상화를 위한 용기와 배짱이라면 그것이 바로 미래를 위한 정책일 텐데 무슨 걱정이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