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 청문회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이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면서 나라가 시끄럽다. 상임위원회 차원에서도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그 대상을 확대한 것인데, 법안이 정부로 넘어간 지금 사실상 칼자루는 박근혜 대통령이 쥐고 있다. 법제처의 법률 검토 내용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알려졌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가늠하기 힘든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한 달 전만 해도 박 대통령은 20대 총선 패배의 원인을 찾기 위해 민심을 청취하겠다며 소통의 제스처를 취했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여야 원내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회동도 했다. 전에 없던 유연한 태도로 농담까지 섞어가며 여야 원내 지도부와 일일이 인사까지 하는 모습은 달라진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스타일을 기대하게 했다. 회동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성과도 있었다는 평가였다. 작게나마 '협치'의 가능성이 보이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협치의 틀을 깨는 장본인으로 박 대통령이 지목되는 상황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여야 원내 지도부 회동을 가진 것도 여소야대로 정치 지형이 바뀐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노동법 등 개혁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의 협조를 구하려는 시늉에 불과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박 대통령이 비서실장으로 여야 정치인과 두루 소통하고 있는 이원종 전 지역발전위원장을 기용했을 때만 해도 협치의 창구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삼을 요량이었다면 협치를 약속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가 모든 것은 박승춘 보훈처장이 결정할 문제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지만, 보훈처장이 박 대통령의 명에 항명했다고 여기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소통의 달인이라는 인물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한들, 개개인의 역량과 상관없이 박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직언을 못하고 있다. 세간에서 청와대 참모진 인사를 두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조롱이 나오는 이유이다.

대북정보 수집과 분석을 담당하는 국정원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북한군 전 총참모장을 사망했다고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북한 붕괴론을 믿는다는 이유로 국정원이 균형 감각을 잃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합해서 보고한 결과다.

토론과 소통 없이 대통령의 지시만 받드는 지금의 청와대 분위기는 종종 전임 대통령 시절과도 비교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토론문화와 횡적 문화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지시문화와 종적 문화만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수시로 토론을 하며 정책을 가다듬었다. 과거 정권에서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이 주요 현안을 두고 활발하게 토론을 펼치고 출입기자들도 자주 만나 정책을 설명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던 것과는 달리 지금 청와대 기자실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당선인 시절부터 불통의 대명사였던 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적극적인 소통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3당 체제로 재편된 정치 상황에서는 협치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고집을 내려놓고 소통할 것을 얼마나 많은 언론이 주장했는가. 올해 연말까지가 박 대통령에게 남아 있는 골든타임이다. 지금이라도 박 대통령이 소통을 위해 진정성을 갖고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면 너무 기대가 큰 것일까.

서울정치부 차장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