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회가 영화제 조직위원장에 김동호 전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추대하기로 사실상 합의했다고 한다. 논란의 핵심이던 조직위원장직을 놓고 양측이 합의했다니 안도하는 한편으로 우려가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안성기-김동호 카드로 팽팽히 맞서던 양측의 전격 합의가 사태의 완전한 봉합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부산시민이 잘 알기 때문이다. 김동호 체제의 BIFF는 불씨를 덮어두는 미봉책인 셈이다.

김 전 위원장은 BIFF의 산증인이다. BIFF에 대해 그만큼 잘 알기 때문에 조직위원장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 문제는 지금이 BIFF의 변혁기라는 점이다. 부산시장이 당연직 조직위원장직을 사퇴한 후 정관 개정을 두고 시와 집행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등이 공금 횡령으로 검찰에 의해 불구속기소된 상황이다. BIFF 출범 때부터 관여한 김 전 위원장이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BIFF 개혁을 객관적 입장에서 냉정하게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합의 추대의 공식 발표와 관련한 집행위의 태도도 석연찮다. 부산시와 집행위는 합의 추대 사실을 다음 주 월요일 공식 발표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집행위가 서둘러 언론에 흘렸다. 이 전 집행위원장 등의 비리를 물타기하려는 등의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을 사는 이유다. 집행위는 이 전 집행위원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정치적 의도"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의도의 수사는 지양되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집행부의 비리 의혹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합의 추대에도 불구하고 BIFF의 운영시스템을 바꾸는 정관 개정이라는 큰 틀에서는 여전히 양측의 견해가 대립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BIFF의 주인은 부산시도 영화인도 아닌 부산시민이다. 시민의 뜻을 모아 출범했고, 예산의 상당 부분을 시민의 세금으로 꾸려간다. '다이빙벨' 사태로 부산시에 부정적 인식을 가졌던 시민들이 이제는 집행위가 BIFF를 영화인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기우는 것도 주목할 일이다. 김동호 체제는 BIFF 연착륙의 험난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