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대학입시 얘기로 시작한다. 학력고사(1982~1993) 세대들은 기억할 거다. 입시학원에서 공개하는 점수에 따른 대학배치표의 최상단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문과는 법대, 이과는 의대. 간혹 시류에 편승해 일부 학과가 의대를 앞서거나 어깨를 나란히 한 적은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전국 41개 의대가 배치표 상단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과학고 등 특목고가 지역별로 있지만 유독 자사고의 경쟁이 치열한 이면에는 의대 진학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법대에서 간판을 바꿔 단 로스쿨도 의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선호도가 높은 건 마찬가지다. 사법시험 존치 여부로 여전히 시끄럽지만 그건 과정의 문제일 뿐 지향하는 바가 같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의대와 로스쿨이 우등생의 목표가 된 이유는 뭘까.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부와 명예가 동반되는 면허 즉, 자격증 때문일 것이다. 흔히 공무원을 '철밥통'이라 하지만 알고 보면 이 고귀한 면허는 종신제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는 차츰 어두운 구석이 걷히고 있다. 과거 관행으로 넘어갔을 법한 것도 이젠 제동이 걸리고 있다. 오죽했으면 '김영란법'이 세상에 나왔을까.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공무원은 물론 공기업 심지어 민간업체까지 이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있다. 금지약물 양성반응이 나온 박태환도 예전 같으면 대승적 차원에서 리우 올림픽 출전이 가능했을 텐데 최근 대한체육회가 그를 위한 선발규정을 고치지 않기로 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원칙대로'가 적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하나, 아직까지 성역인 곳도 있다. 법조계다. 이곳은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공고하며 낯짝도 훨씬 더 두꺼운 듯싶다.
최근 수년 사이에 그랜저 검사를 위시해 스폰서 검사, 벤츠 여검사 사건 등과 입에 담기도 민망한 고검장 및 초임 검사의 성추문이 불거졌다. 권력을 주체하지 못한 검사의 일탈이 빚은 결과였다. 검찰이 한 사건만이라도 평소 피의자 대하듯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불치병에 다름 아니다. 이 중 압권은 2014년 8월 발생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성기노출 상태 배회 행위가 아닐까 한다. 그는 밤 늦게 도로변 등에서 다섯 차례나 음란행위를 했다. 여고생의 신고로 현행범으로 체포된 후 동생 이름과 주민번호를 대며 신분을 속이기도 했다. 근데 법무부는 봐주기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개업에 제약이 없고 연금도 받을 수 있는 사표 수리를 친절하게 해줬다. 경찰은 공연음란죄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3개월 후 검찰은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로 풀어줬다. 그는 결국 14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서울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이를 두고 한 변호사는 할 말이 없다고 노코멘트로 일관했고, 한 정신과 의사는 재범 위험성이 없다는 걸 어떻게 한 번의 진찰로 단정지을 수 있느냐고 문제를 삼았다.
진료와 검사 등의 명목으로 환자와의 신체접촉이 많아 성범죄의 개연성이 큰 의료계는 의대생들의 자정 움직임이 일어 그나마 다행이다. 5년 전 고려대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가 실형을 받은 후 성균관대 의대에 다니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자 고대 및 성대 의대 학생회가 성범죄자에게 의사면허를 주는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19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 몇몇이 성범죄 의사를 퇴출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의료계 등의 반발에 부딪쳐 줄줄이 무산된 가운데 나온 목소리여서 신선하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엔 억울한 사람이 천지다. 가난한 사람들을 가차없이 처벌하는 것이 한국법이다. 만일 일반인이 김수창 전 지검장과 같은 죄로 체포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대적 박탈감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현행 의사와 변호사의 면허는 불사조다. 취소됐다 하더라도 취소 원인 사유가 소멸됐거나 개전의 정이 뚜렷할 경우 2년 또는 3년 경과 후 보건복지부에 재교부 신청을 할 수 있고(의료법 65조) 일정 기간 후 대한변호사회에 자격 등록만 하면 살아날 수 있다(변호사법 7조, 16조). 부디 20대 국회에선 의사와 변호사들도 성범죄 등 죄질이 나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이 적용돼 면허가 영원히 살아날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됐으면 한다. 변호사회와 의사회 등 직능단체도 침묵 대신 입법에 적극 협조했으면 한다. 그러면 학생들의 선호도가 좀 달라질까.
의료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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