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같은 아름다운 장면을 만났다. 얼마 전 토요일 저녁 무렵, 서울역에서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향하던 순간이었다. 같은 칸 옆 라인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와 두 남자아기가 막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얼굴 비비기, 하이파이브 등을 비롯한 시끌벅적한 인사가 오가는 걸 보니 함께 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배웅이 목적이었다. 28분이라는 엄마의 낮은 외침과 함께 아빠는 바쁘게 헤어짐을 뒤로 하고 기차를 내려갔다.

바깥 플랫폼에서 아빠가 손을 흔든다. 우리가 중간에 껴있는데도 안중에 없었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난리가 아니었다. 손을 흔들고 아빠를 부르고…. 30분이 되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배웅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가 빠르게 걷는 것이 아닌가. "헐~." 아이들과 엄마는 여전히 손을 흔든다. 점점 더 아빠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보고 있던 나와 아내가 더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심지어 뛴다. KTX가 아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빠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5분, 아니 창밖으로 비춰진 1분 정도의 가족 배웅 풍경은 살짝 소름을 돋게 했다. 감동!!! 정말 오랜만이었다. 요즘 보기 드문 특별한 아빠였다. 아빠의 애타는 표정과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눈을 가족에게 고정한 채 손을 흔들며 뛰던 아빠의 모습은 가족사랑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내릴 즈음, 아내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잠이 들었는데 엄마 혼자 어쩌냐는 것이었다. 기차가 부산역 플랫폼에 닿았다. 누군가가 플랫폼에서 아이들 쪽 창문을 '톡톡' 치신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셨다. 완벽한 가족이었다. 부산에서의 삶. 그것은 어느 도시보다 잦은 이별과 만남을 반복게 한다. 지금도 금요일이나 토요일 늦은 시각이면 부산역 2층 출구 쪽에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꼭 껴안고 고생했다 하며 짐을 받아들고 어깨를 도닥여 주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볼 때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곤 한다. 그렇다. 가족에 대한 애절하고 정성 어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가진다는 것, 이 이상 대한민국 소시민들의 바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가 불시에 삑삑거린다. 온통 자신이 최고이고 나를 믿어 달라는 선전문구들이 난무한다. 물론 시민들은 이 메시지들이 특별히 나에게만 보낸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잦아서 짜증이 나고 심지어 반감이 순간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이런 것뿐인가 하는 측은한 마음으로 변한다. TV에서는 온통 '정치 냉전'뿐이다. 웃으며 나라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장면을 만날 수가 없다. 뭐가 그리 심각한지. 무엇 때문에 항상 뚱한 표정에 찌푸리고 언성을 높이는지. 그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슨 권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이리도 들쑤시는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정 이 나라를 지켜갈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정치를 하고 있는지, 자신의 모습을 계파 속에 숨기는 그런 행태를 언제까지 계속할지. 묻고 또 묻고 싶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연신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하며 명함을 나누어 준다. 이 즈음이면 늘 있던 일이기에 "4년이 참 빠르네" 라는 푸념과 함께 건성건성 지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진정한 국민의 일꾼이 되겠다고 약속하는 후보자들께 전하고 싶은 소시민으로서의 몇 가지 바람이 있다. 사실 너무 당연하고 소박한 독백일 뿐이다.

"첫 번째는 '우리는 당신과 눈높이를 맞추고 같은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라는 소망입니다. 당신께서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소시민들이 염원하는 작은 소망들을 지켜주는 그런 따뜻한 정치인이 되어 주십시오. 추운 날 발을 동동 구르며 플랫폼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던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편에 서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당신에게 4년 내내 신뢰의 미소를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선각자들을 보십시오. 모두 자신보다는 국민들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계파를 따라 움직이며 적당히 요행수를 노렸던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음 세대가 당신을 분명히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신뢰의 정치인이 되어 주십시오.

두 번째는 '권위라는 철옹성 같은 자기 방벽을 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부탁입니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소시민은 4년 동안 당신과 만나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합니다. 물론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당신의 추종자들만 만나서 그들 말만 듣는 것은 절대 말아 주십시오. 그 말이 전부인 양 오해하지도 말아 주십시오. 모두와 함께 고민하고 아픔을 나누며 또 울어주십시오. 당신을 싫어하거나 당신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지, 그들의 얘기를 듣고 도닥여도 주십시오. 연줄 없는 사람들은 당신과 소통할 수 없고, 평범하고 약한 사람들의 주장은 뒤로 보내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마셔야 합니다.

세 번째는 '대한민국과 국민을 매일매일 생각해 주십시오'라는 간청입니다. 소속 정당과 계파, 지엽적인 이익에 매몰되어 어떤 것이 국가의 미래인지 판단치 못하는 그런 정치인이 되시면 절대 안 될 것입니다. 당신이 원래 품었던 그 소망과 비전을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초심을 잃지 않으셔야 합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법 행정 경제 노동 국제 복지 문화 환경 등의 분야 전문가라 평가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 분야를 선진화시키는 최고의 정치인이 되어 주십시오. 모두가 4년 동안 그 일에만 집중한다면 좋은 변화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바른 일이라면 비록 다른 정당과 계파의 주장일지라도 깨끗이 공감하고 오히려 힘을 합치는 그런 혁신의 정치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소시민들보다는 한 발자국 아니, 수백 미터 앞에 서서 우리를 리드하는 신뢰와 희망의 정치인이 되어 주십시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